NOTICE 
사람에 대한 예의 에 해당하는 글 : 53 개
2007.01.28 :: 거인의 외투 1
2007.01.18 :: Heaven & Hell 2
2007.01.14 :: 어느새 20년....
2006.12.31 :: 뚱보만세 1
2006.11.21 :: 가수 오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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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7
反 FTA집회 중
시청 앞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치말자.
시대의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써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Eric, John Ernst Hobsbaw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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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 햇살 위로 찬 바람 스치던 날.
갑작스레 몰아치기 시작한 바람 앞에 웃옷을 벗어서 입혀준 아빠.

그때는 아가만 이쁘다고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는데 막상 자신의 옷을 아가에게 벗어주고
남방차림으로 찬 바람 앞에 선 아빠의 모습을 담는 것은 잊고 말았다.

...찍는 마음은 삶을 닮는다.
언젠가 나도 아버지가 되는 날, 그때에는 아버지의 모습을 찍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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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F3hp / AF 80-200 2.8D / Kodak TX 400(800 up)

예전, 광주에서 전투경찰로 근무하던 선배는 시청 앞을 지키다가 밀려온 시위대에 의해
기동대 자체가 박살나곤 뿔뿔히 흩어져 완도에서 경찰 생활을 마쳤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차라리 '박살난 것이 다행이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1989년, 그 80년대의 끝자락에서 다른 곳도 아닌 광주의 '시위진압병력'으로 근무하는 것이
얼마나 지옥같은 일이었는지, 그것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죠.

늘 긴장해야 한다며 위에서 아래로 이유없이 자행되던 얼차려와 폭력..
그것은 '군대가면 다 그런 거니까'로 참을 수 있었지만,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적대시
하는 광주의 분위기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단지,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라면서.

기동대 자체가 뿔뿔히 공중분해되어 어떤 이는 순천으로, 어떤 이는 목포로, 어떤 이는
완도로 보내지는 상황에서 섬 동네에서 '정말 경찰' 노릇을 하면서 살게되니 오히려 맘도
편하고 '박살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던 선배. 나중에는 이런 말로 이야기를
맺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시위가 없는 완도에서는 지날 때마다 이것저것 쥐어주며 '고생한다.'고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주는 그 동네사람들에게 고마워서라도 '경찰노릇'열심히 하려고
했었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 그 말이 이제 무슨 말인지 알아. 광주가 지옥이고,
완도가 천국이었던 것이 아니라 경찰이 경찰로 머물지 못하고 엉뚱한 일을 하게되니
지옥 같았던 것이고 해야할 일을 하게되니 행복했던 거라고."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할일을 하고 지내는 것과 있지 말아야 할 자리에서 엉뚱한
일을 하고 지내게 되는 것,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이처럼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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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1964~1987)

그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가 교육받은(?)운동권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이고,
그 나이의 대학 생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균형감각을 지니고 있던 착한 학생이었다고 증언한다.

그가 그렇게 어이없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 그에게 붙어있는 '열사'라는 칭호는
절대 붙지 않았을거라는 이야기도 그래서 설득력이 있게 다가온다.

당시, 공안형사들이 노렸던 것은 그가 아니었으며 그의 선배였던 박종운이었다.

http://www.raysoda.com/Com/Photo/View.aspx?u=1676&f=U&pg=2&p=110857

그가 죽기 전까지 우리는 그가 누군지도 몰랐으며, 왜 그렇게 떠나야 했는지도 전혀 몰랐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 불을 당겨 세상사람들에게 '사람답게 살고 싶은 세상'을 외쳤던
전태일처럼, 그 역시 불의에 의한 죽음으로 이 땅의 양심들을 일깨웠으며 결국,
또 다른 세상의 문을 여는 하나의 밀알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어느새 그가 떠난지 20년,
다시 나는 그와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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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으로 비만한 아동의 60~80%에서 부모의 한쪽, 혹은 모두에게서 유전적인 형질로 비만을 물려받는 것이 확신된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가족의 식생활과도 큰 관련이 있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체질적 성향이 발현되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비만의 원인이라는 것은 전문의들도 대부분 수긍하는 결과다.

 

이처럼, 비만은 많은 이들이 뚱뚱한 사람은 게으르다.라고 단정하는 이유를 제공하는 성격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도 원치 않는 상황에서 맞이하게 되는 질병적인 요소가 크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게으르다는 선입견처럼 그들의 발목을 부여잡고 있는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이런 문제는 남성들보다는 여성, 장년층보다는 유소년, 청장년층에서 더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서울에서 태어난 내 형이나 내 동생과 달리 나는 외가가 있던 부산에서 태어났다. 당시, 어머니를 진찰했던 의사선생님이 쌍둥이일지 모른다.는 진단을 내리시고 커져만가는 어머니의 배를 안쓰러워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배려로 친정에 내려와서 출산을 하시게 된 것이지. 어쩌면 지금의 내 아이디인 미스터톤 많은 이들이 미스터톤에서의 톤이 TONE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 톤은 TONE가 아니라 TON이다. 1,000kg의 다른 말 이 자리 잡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자라면서 단 한 번도 평균이나 평균 이하의 몸무게를 마주한 적이 없던 내게 뚱뚱하다.는 말은 낯선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스개 소리로 콜라 1.5리터만 마셨어도 군대에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소리도 들었고, 훈련기간동안 내 몸무게를 빼주겠다고 작정한 취사반장 덕분에 강제적인 식이요법을 당하는 고충도 겪었다. 하지만, 그래도 80kg이 넘는 몸은 뚱뚱한 이들이 가장 많은 살이 빠진다는 군대생활 기간에도 늘 따라다녔다. 물론, 그 당시에 내게는 그 몸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젊은 나이가 있었고 몸매에 대해 그다지 열등감 따위는 느끼지 않던 단단한 구석이 있었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 삼십대가 아닌 사십대가 더 가까이보이는 시절이 되고나니, 슬그머니 예전의 자신감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듯 하다. 그런 상황에 만난 '미녀는 괴로워.'

뒤늦게 그녀에게서 스무살, 그 자신감 속에 묻어버렸던 부끄러운 부분이 기어나왔다. 여전히 말로는 선천적인 비만에 대해 읊조리고 있으면서도 진작에 손과 발로, 그리고 가슴으로 덮어두고 있었던 그 부분이. 그녀의 아픔이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라도 가슴에 와닿은 이유는 어쩌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런 아픔 탓이 아닐까.

영화긴 했지만, 그녀가 정신을 놓은 아버지를 안고 자신의 일에 대해 커밍아웃을 감행하던 장면이 여전히 눈 앞에 아른거리는 것은 그런 세상이 아직도 요원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으리라. 55사이즈와 65사이즈에 갈등하는 10만큼의 여성들이 90사이즈와 120사이즈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자들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은 자신의 처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이쁜 여자'만 바라보는 늑대들에게 - 나도 포함된다 - 한 가지 이상의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뚱보만세라고 제목을 적으면서 가슴 한 구석에서 '난 아직 뚱보가 아닌데..'하는 비굴함이 기어나왔다. 180에 110키로그램이 뚱보가 아니라면 대한민국에 뚱보는 아마 없으리라.

뚱보만세, 뚱보만세, 뚱보만세...
새해에는 모쪼록 뚱뚱하다는 이유만으로 가슴 오그라드는 그런 일이 이 땅에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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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yker Brigade Combat Team, SBCT -
미 신속기동여단의 피라니아 장갑차

현재 미군은 세계적으로 경량화, 기동화 하는 추세입니다.
이른바 '5분 투입조'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스트라이커(Stryker Brigade Combat Team, SBCT)가 대표적인 신속기동부대죠. 그렇다고 예전 대규모의 병력만큼 전투력이 없느냐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보유한 무기나 장비에 있어서 예전과는 차원을 달리하죠. 이렇게 군의 몸집을 줄이는 대신 정예화시키는 이유는 어차피 모병제하에서 -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모병제를 택하고 있습니다. 이등병부터 장군에 이르기까지 모두 직업군인들이죠 - 다수의 병력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작지만 정예화된 병력을 유지하는 것이 '원가절감' 차원에서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유사시 대규모 부대보다 훨씬 빠른 투입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지금과 같은 노선을 택하게 된 큰 이유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예전처럼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으로 최근의 전쟁 방식이 변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이유가 되겠죠.

미군은 최근 춘천의 육군항공단 기지였던 - 아파치와 코브라로 구성된 지상 공격용 헬기 부대였죠  - 캠프 페이지를 철수했고, 사령부격인 용산 기지 역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평택으로 이전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먼저 '왜 평택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죠.

왜 하필 평택인가?

미군은 올해 1월,
공군을 5개 통합사령부 예하 9개 공군전투사령부로 개편하고 그 중 경기도 오산에 주둔중인 미 7공군을 동북아공군전투사령부로 변경시켰습니다. 이 기지가 바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평택인근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K-55입니다.
평택시 팽성읍에 자리 잡고 있는 캠프 험프리(K-6)와 인근 사격장, 통신소, 탄약고와 훈련장까지 합하면 454만평이 넘는 엄청난 크기의 기지가 이미 자리잡고 있는 셈이죠.

오산, 송탄 기지는 이미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기 시작한 이래 매년 계속적으로 팽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특히, 미군의 '신속대응군화'에 따라 제공권 장악이 필수적인 요소가 되면서 오산, 송탄 지구의 공군기지와 함께 바로 인근인 평택의 지상군 기지인 캠프 험프리간의 유기적인 결합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평택은 가까이 평택항이 있어 유사시 해군의 접근도 용이하고 - 이것은 선박을 이용한 대규모의 병력이 일시에 투입 가능하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 인근의 송탄, 오산 기지를 통한 공군의 투입도 손쉬운데다 이미 해병, 육군등 지상병력의 주둔지도 자리잡고 있어 미국에게는 '더 이상의 좋은 조건은 없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완벽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만큼 기지로 자리잡는데 최고의 여건이라는 뜻이죠.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인 미군 기지가 축소되고 병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평택으로의 러쉬는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평택의 미군이 전쟁의 위협이 되는 이유는?

이것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이 난무합니다만, 7공군이 동북아공군전투사령부로 변경된 것에서 그 단초를 찾아보자면 - 북한만을 견제할 목적이었다면 중국까지 아우르는 개념인 '동북아'라는 표현을 썼을리가 없죠 - 가장 가까운 중국에 대한 위협의 증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최근 계속적으로 본토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대만에 대해 중국정부는 '독립선언과 동시에 침공'하겠다고 계속적으로 공언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게다가 조지 부시 주니어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우방에 대한 침공'으로 간주하여 좌시하지 않겠다고 역시 공언해왔습니다.
만약, 이러한 가정이 현실화 된다면 대만을 제외한 미군의 가장 신속 병력투입지로 대한민국과 같이 적합한 곳은 없습니다. 평택에서 빼이징까지 1200Km가 채 되지 않는다는 얘기는 초음속 전투기가 30분내외로 도달할 거리에 중국의 심장이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죠 - 중국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턱 밑의 비수와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 잘 보도되지 않고 있지만 중국이 현재 미국의 이와 같은 행보에 대해 계속적으로 견제하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 근거한 것이죠.

2008년 개최하는 북경올림픽에 맞춰 대만이 독립을 선언한다는 식의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그럴듯한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미군기지를 만들어 주려는' 대한민국 정부의 모습은 계속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높힌다는 뻔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는 있지만 이미, 전세계의 군사전문가들은 - 특히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거의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남한의 힘만으로도 북한의 군사력은 이미 넘어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미군의 '동북아공군전투사령부'와 '신속기동군'들이 궁극적인 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바로 그 위의 중국이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우리 땅이 남의 나라 전쟁터가 될 우려가 있다는 것과도 바로 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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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9

어린 시절 나는 마당에 정신없이 줄을 친 거미들이 징그럽고 싫어서 함부로 녀석들을
죽이곤 했다. 특히 BB탄이 나가는 총을 손에 넣은 뒤로는 거미보다 마당에 널린 총알
치우는 것이 더 문제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거미들의 씨를 말렸다.
그러던 내가 녀석들을 죽이는 일들 멈추게 된 것은 실로 우연한 일 때문이었다.

마당을 지키는 견공들에게 밥을 주기 위해 나왔던 내가 풀 숲 가까이에서 웅크리고 있던
거미 한 마리를 만난 것은 어느 해 늦가을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어갈 정도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웅크리고 있던 거미 한 마리..
그 녀석은 무엇인가와 죽음을 넘나드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것도 거미줄이 아닌
풀숲 속에서.

마당에 살던 검은 개미들이 떼로 녀석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거미줄 위에서
여유있는 '게임'을 벌일 녀석은 웬지 땅바닥에서 끝도 없이 몰려드는 수 십마리의 개미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녀석의 등 뒤에 놓여있던 하얀 주머니, 자신의 알집을 지키기 위해서 였던 것이다.

웬지 녀석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개미들을 손으로 쉬쉬 쫓아냈을 때, 녀석은 이미
여기저기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럼에도 도망치지 않고 내 손길도 경계하던 녀석....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당거미가 거미줄에서 내려오는 때는 보통 10월
중순이라 한다. 그때까지 거미줄에 걸린 곤충 따위를 통해 영양분을 비축하고 땅에 내려와
늦가을 찬바람이 스며들지 않을만한 장소를 찾아 알을 낳게 된다.

하지만, 녀석의 눈물겨운 전쟁은 바로 그 이후부터다.

알을 낳은 이후부터 엄마거미는 알집 주변을 떠나지 않고 그 앞을 지키기 시작한다.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그저 그 앞을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지키는 것이다.
내가 만났던 그 녀석도 바로 자신의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벌였던 것이다.

이 눈물겨운 싸움 끝에 어미들이 떠나고 나면 알집은 혹독한 겨울과 맞닥드리게 된다.
어쩌면 그 곳을 떠나지 않은 엄마의 마음도 자신의 새끼들이 겪게 될 가혹한 시련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오늘 다시 만난 또 다른 거미 엄마와 새끼들.
얼마나 녀석들과 떨어지기 싫었으면 알집 주변에 거미줄을 묶어두고 그렇게 숨을 거두었을까.
연탄을 집안에 들이여다 나는 녀석과 새끼들을 바람이 들지 않을만한 곳을 찾아 옮겨주고
들어왔다. 여름이 되면 다시 거미줄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되겠지만 하찮은 미물이라도 모든 엄마는
똑같다는 것을 가르쳐준 녀석들을 나는 계속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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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쪼록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께 즐거운 성탄 맞이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미리 글과 시진을 올리는 이유는 아마도 이번 크리스마스도 23일부터 26일까지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안될듯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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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2. 5
서울 성공회대성당

우연히 성공회 사제들의 중창을 들을 기회가 생겨서 성공회 성당을 찾았습니다.
제가 성공회라는 것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수장령으로 인해 교황에 의해 파문된
영국의 국왕 헨리 8세가 만든 교회라는 것 정도 밖에 없었습니다만 - 게다가 저는 가톨릭
신자거든요 - 신부님들의 중창이라는 것 자체가 제 발을 잡아 끌더군요.

덕수궁 영국 대사관 옆에 자리잡은 성공회 대성당 역시 늘 볼때마다 사진을 찍고 싶었던
건물이기도 했구요.

...그 곳에서 두 시간 정도의 연주회 시간동안 내내 행복했습니다.
신부님들의 목소리도 멋지셨지만, 연주회 중간의 Intermission시간동안 성당 마당에서
낮선 이방인들에게 커피와 과자를 대접하며 한 식구처럼 대해주신 분들께도 이런 기회를
통해서라도 감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커피 마시면서 찍은 사진 한 장.

3초동안 숨도 안쉬고 손각대로 찍은 사진이지만, 앞으로 이 사진을 만날 때마다 그날의
기억들을 새록새록 되새길 것 같습니다.


BGM : 갓등중창단 - 정의와 평화가 흐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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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 대추리를 살리자 공연장에서

대추리 관련 집회 때마다 빠짐없이 얼굴을 내보이는
가수 오지총.
무관심했다면 그의 얼굴을 길에서 보더라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를 기억하기로 했다.
공연 중 기타가 꺼지고, 추운바람에 손이 얼어버리는 일 앞에서도 그 큰 목소리를 더욱
키워가며 외쳤다. 대추리를 기억하라고, 대추리를 구해달라고.

어쩌면 국가공권력 앞에 대추리는 결국 침탈될 운명일지도 모른다.
한미공조 속에서 기어이 대추리, 도두리에 성조기 휘날리는 날이 오게될지도 모른다.
땅파먹고 사는 것 밖에 모르는 농삿꾼들에게서 땅을 빼앗는 패악을 결국 감수해야할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아니라고 해야한다.
생각하기도 싫은 그런 날이 오고야 말지라도 '누군가는 앞장서서 이건아니야!'라고
외쳤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그리고 나는 오늘도 외친다.

"대추리를 살려주세요!"

BGM : 오지총 - 반딧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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