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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kyraider
2006.12.19

어린 시절 나는 마당에 정신없이 줄을 친 거미들이 징그럽고 싫어서 함부로 녀석들을
죽이곤 했다. 특히 BB탄이 나가는 총을 손에 넣은 뒤로는 거미보다 마당에 널린 총알
치우는 것이 더 문제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거미들의 씨를 말렸다.
그러던 내가 녀석들을 죽이는 일들 멈추게 된 것은 실로 우연한 일 때문이었다.

마당을 지키는 견공들에게 밥을 주기 위해 나왔던 내가 풀 숲 가까이에서 웅크리고 있던
거미 한 마리를 만난 것은 어느 해 늦가을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어갈 정도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웅크리고 있던 거미 한 마리..
그 녀석은 무엇인가와 죽음을 넘나드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것도 거미줄이 아닌
풀숲 속에서.

마당에 살던 검은 개미들이 떼로 녀석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거미줄 위에서
여유있는 '게임'을 벌일 녀석은 웬지 땅바닥에서 끝도 없이 몰려드는 수 십마리의 개미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녀석의 등 뒤에 놓여있던 하얀 주머니, 자신의 알집을 지키기 위해서 였던 것이다.

웬지 녀석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개미들을 손으로 쉬쉬 쫓아냈을 때, 녀석은 이미
여기저기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럼에도 도망치지 않고 내 손길도 경계하던 녀석....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당거미가 거미줄에서 내려오는 때는 보통 10월
중순이라 한다. 그때까지 거미줄에 걸린 곤충 따위를 통해 영양분을 비축하고 땅에 내려와
늦가을 찬바람이 스며들지 않을만한 장소를 찾아 알을 낳게 된다.

하지만, 녀석의 눈물겨운 전쟁은 바로 그 이후부터다.

알을 낳은 이후부터 엄마거미는 알집 주변을 떠나지 않고 그 앞을 지키기 시작한다.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그저 그 앞을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지키는 것이다.
내가 만났던 그 녀석도 바로 자신의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벌였던 것이다.

이 눈물겨운 싸움 끝에 어미들이 떠나고 나면 알집은 혹독한 겨울과 맞닥드리게 된다.
어쩌면 그 곳을 떠나지 않은 엄마의 마음도 자신의 새끼들이 겪게 될 가혹한 시련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오늘 다시 만난 또 다른 거미 엄마와 새끼들.
얼마나 녀석들과 떨어지기 싫었으면 알집 주변에 거미줄을 묶어두고 그렇게 숨을 거두었을까.
연탄을 집안에 들이여다 나는 녀석과 새끼들을 바람이 들지 않을만한 곳을 찾아 옮겨주고
들어왔다. 여름이 되면 다시 거미줄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되겠지만 하찮은 미물이라도 모든 엄마는
똑같다는 것을 가르쳐준 녀석들을 나는 계속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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