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사람에 대한 예의 에 해당하는 글 : 53 개
2012.01.28 :: 바다사나이
2012.01.23 :: 브라질에서
2008.03.15 :: 행복한 한 때
2007.08.11 :: 젊은 사진사들 1
2007.07.30 :: 기원


 


Photo By Skyraider
2011.10.26
Atlantic Ocean - M/V CS DAISY

 승선생활을 하게 되는 선원들에게 가장 괴로운 일은 승선생활에 따른 고독감이나 날씨 따위가 아니다. 식구들이나 지인들과의 유대가 느슨해지는 상황이 그들에게는 가장 괴롭고 어려운 일이지. 행여 가족이나 지인중 아픈 이들라도 생기면 속수무책으로 발만 동동 구르게 되는 상황. 해상생활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이런 일들이 습관처럼 변한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답답하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선원들이 얻기 가장 어렵지만 늘 꿈꾸는 것이 그런 인간관계들이 끈끈하게 지속되는 것이지.

사진은 배로 날아든 낭보(외아들의 공무원 시험 합격소식)에 즐거워하고 있는 갑판장.
햇수로 40년째 승선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베테랑에 좀처럼 감정의 기복을 보이지 않는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지만 즐거운 소식 앞에 어느새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했다.

함께 할 수 없어도 늘 함께하길 꿈꾸는 이들, 그들이 바로 뱃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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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kyraider
Paranagua, Brazil


2011.08.11

 남쪽 하늘엔 우리나라에서는 보이지 않는 남십자성(호주 국기에 붙어 있는 바로 그 별. 적도 이남에서만 보여 ^^)이 번쩍이며 가는 길을 비추고 있고 본선은 힘차게 동쪽을 향해 잘려가고 있단다. 내일 아침이면 아프리카 남단 아굴라스곶에 도달하고 그때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여정은 마무리 되지. 이제 조용한 바다, 인도양으로 접어들게 된단다.
(하긴 요즘 몬순 시즌에 해적들까지 창궐해서 더이상은 조용한 바다는 아니구나)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곡물을 싣게 되는 항구에는 늘 물고기들이 넘쳐났단다. 
하지만, 어른들 장딴지만한 월척들이 떼지어 몰려다는 것을 보면 낚시하고픈 생각보다는 오히려 거부감이 들 곤 했지. 어항 속에서 물 밖으로 뻐끔대는 금붕어 마냥 물 위에 떠있는 곡물을 주워 먹으며 덩치만 남산 만해진 녀석들. 하긴 그런 녀석들을 좋아하는 녀석들이 있긴 하더구나. 

Paranagua, Brazil - 엥커리지를 맴돌아 다니던 돌고래 두 마리
 
 뉴올리안스에서는 악어들이 그랬고 이번 파라나구아에선 돌고래들이 그러했지. 
배들이 접안하는 부두 바로 앞까지 와서 물고기를 낚아채가던 녀석들. 
오히려 커다란 고기들보다 녀석들이 더 큰 볼거리였단다. 불과 이틀 동안의 브라질 기항이었지만 정말 여러 가지 감정을 만나게 되었단다. 
이들이 보존하고 있는 역사적인 건물들은 죄다 17세기부터 시작된 포르투칼의 브라질 정복과 관련된 것들이었지.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은 것이 36년, 하지만 이들은 수백년을 그들의 억압하에 있었으니 그것은 그럴만도 한 일이려니 싶더구나. 하지만, 그 외세의 점령이 독립을 이뤄낸 지 오래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 중이란 것을 마주하게 되니 더욱더 그들의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져 왔다. 

Paranagua 옛 기차역

 우리가 접안해서 짐을 실은 부두는 전세계 식품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세계 3대 식품 메이저중의 하나인 Cargill의 곡물부두였단다. 인터넷을 검색해보시면 간단히 찾아지는 사실이지만 카길과 타이슨 푸드와 같은 식품메이저들은 예전부터 식품에 대한 유전자 조작에서부터 남미의 원시림 파괴의 주범으로까지 계속 입방아에 오르는 ‘파렴치한 기업’으로 유명하지. 게다가 그런 일로 위축되기는 커녕 식량 자체가 무기가 되는 현대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나가고 있는 웃을 수 없는 상황이란다. 
 
 특히나 요즘처럼 전세계적인 식량부족으로 인해 곡물 자체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상황은 그들이 더더욱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이 되어주고 있지. 굶어죽기 싫다면 이들이 만든 곡물을 사다가 먹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브라질에서 느낀 여전한 외세의 지배는 부두에서보다 그들의 시장에서 더더욱 심각하게 다가왔단다. 이것저것 배에서는 구할 수 없는 과자들을 사러 찾은 Mart에 진열된 상품들 99%가 Nestle의 제품이었지. 아주 조금만 과장하면 그들의 가게에 놓인 상품 전부가 한 회사의 제품이었다는 것. 이게 정상적으로 느껴지진 않지?
 

1648년 7월 29일 최초로 Paranagua에 상륙한 포르투칼을 기록한 비석.
어쩌면 그들의 고난의 시작이 이 날이 아니었을까.


 Nestle는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으로 현재 Coca-cola Company의 자회사로써 우리나라에도 테이스터스 초이스와 네스카페 같은 인스탄트 커피로 그 위용을 보여주고 있는 매머드 업체란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브라질의 전세계 커피시장의 절반을 담당하는 세계 1위의 커피 생산국이란다. 아마존으로 대변되는 되는 비옥하고 열대성 수목에 알맞은 기후로 인해 원래 원산지인 아프리카의 모든 커피 생산량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커피가 생산되는 국가지. 하지만, 커피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는 청량음료지만 정작 그것을 
만드는 이들은 적은 임금에 엄청난 노동량을 감내해야하는 이유로 원주민의 눈물방울’이라 비유하는 쓰디쓴 표현도 등장하고 있단다.

 그 이면에 바로 코카콜라나 카길과 같은 식품 메이저들과 스타벅스와 같은 거대 커피 프렌차이즈 업체의 농간이 숨어있지. 

원래 중구난방으로 생산하던 각국의 커피 생산자들이 함께 모여서 자신의 생산량과 그에 대한 수출 쿼터, 그에 따른 이윤을 배분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던 커피는 엄청난 자본을 가진 식품메이저들이 시장에 끼어들면서 ‘무한경쟁’으로 내몰리게 되었단다. 한때 남미와 아프리카, 동남아를 먹여 살리는 황금자원으로 대변되던 커피가 하루아침에 생산자에게는 고통을 주고 식품메이저들에게는 엄청난 이윤을 안겨주는 불공정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것이지. 

공정무역을 외치는 이들이 현재 가장 주목하고 있는 식품이 커피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란다. 우리나라에도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와 같은 곳에서 생산된 커피를 공정무역을 통해 들여오는 이들이 있지만 여전히 극소수일 따름이고 정작 세계 1위의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은 그와 같은 외침조차도 거의 들리지 않는 상황이지. 
이런 상황이 오히려 그들의 내수 시장 속에서 더더욱 심각하게 다가오더구나. 

바로 원두커피를 세계 1위 생산국에서 만날 수 없었던 현실이 그것이었지.

하루종일 시내를 배회했어도 원두나 원두커피를 파는 음식점은 전혀 찾을 수 없는 커피 1위 생산국의 현실을 만나고 나니 지난번 콜롬비아의 일들이 다시 오버랩되기 시작했단다. 그나마 콜롬비아는 ‘최고급’이라는 이미지와 품질을 유지하면서 그들 스스로가 프렌차이즈 업체를 키워내고 국가에서 커피 산업에 대한 공정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브라질에서는 그와 같은 모습조차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단다. 브라질에서 배에서 쓰기 위해 부식으로 올린 커피는 네슬레의 인스탄트 제품이고,그나마도 너무나 맛이 없어서 부식 창고를 채우고 있는 신세로 외면받는 것이 그들의 답답한 현실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여지더구나.

 얼마 전까지 시우바라는 걸출한 인물이 대통령으로 그나마 바꿔놓은 세상이 이런 모습이라니...
그 이전의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 상상도 가지 않더구나.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이방인의 눈에 비친 남미 1위의 대국 브라질의 현실은 이처럼 답답하기만 했지. 어쩌면 ‘커피’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이의 특권이었는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커피를 맛 볼 수 없던 커피 1위 국가에서의 이틀간은 원래 쓴맛의 커피맛을 앞으로 더더욱 쓰게 만들 듯 싶구나.

 단지 이틀간의 브라질 입항이었지만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스타벅스와 코카콜라를 반대하고, 공정무역을 부르짖는지 그 이유를 대강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단다. 이래저래 브라질 커피도 못구했지만 앞으로는 맘편히 스타벅스를 찾기도 어려울 듯 해서 맘이 좀 그렇구나. 


2011년 8월 11일,
대서양의 막바지에서,
재성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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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kyraider
2011.12.02
Sierra Leone, Stevedore Mr. Mugamba
Nikon D700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북상 중인 본선은 어느새 유명한 도시들을 차례로 지나고 있단다.
방금 세네갈의 다카르를 지났고(파리에서 다카르까지 달리는 자동차 경주로 유명하지), 내일쯤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를 지나 카나리아스 제도의 라스팔마스를 가로질러 4일후엔 지중해의 입구인 지브롤터 해협에 다다르게 되지.

지나치는 나라나 도시만을 열거한다면 그야말로 세계를 일주하는 여행가처럼 보일테지만

그저 바다에서 멍하니 바라보며 지나는 입장을 생각해보면 '走馬看山'이란 사자성어가 딱 들어맞는 것이 지금 나의 일이란다. 뭐 내 핸드폰의 사업자인 KT도 내가 뭐 하는 놈인지 참 궁금해할거란 생각도 드네.
두 달 사이에 남아공부터 세네갈까지 아프리카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 주욱 열거되는 로밍내역을 본다면 말이야. ^^

엊그제 떠나온 시에라리온은 북한보다도 못사는 나라로 첫인상은 정말 기나긴 식민지 시절과 바로 몇 해전까지 내전에 시달린 나라라는 선입견이 대부분 그대로 들어맞는 상황의 나라였단다. 예전 김혜자 아주머니가 이곳의 어느 소년을 만나고 정말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데 스쳐지나는 항해자의 눈에는 그렇게 깊게 보이진 않았고 그저 입항 때부터 이런저런 어거지로 아예 선내 면세품점과 부식창고를 거덜내는 공무원들과 에이전트들에게 들들 볶이고 나서 정말 '징글징글한 후진국'이란 인상만 첫인상으로 박아넣었지.

하지만, 그 파렴치한 공무원들이 지나가고 나니 선량하고 욕심없이 사는 일꾼들이 그 자리를 채우더구나. 늘 웃으며 인사도 먼저 건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먼저 걸어오는 호기심 많은 그들 덕분에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낼 수 있었지. 물론 여전히 밉상인 본선에 상주하던 에이전트가 성질을 건드리기는 하지만(본선 부식냉장고를 자기 집 곳간으로 여기는)그외의 대부분 친구들은 인상도 좋고 그 인상만큼 선량한 사람들이었단다.

없이 살아도
낙천적이고 늘 밝게 생활하는 그들 사이에서 그저 좋은 세상, 좋은 나라에 태어나 호의호식하고 살아온 스스로가 잠깐 부끄러워 지더구나. 내 눈에는 희망도 없고 답답한 그들의 상황임에도 낙천적으로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욕심없이 사는 사람들. 혹자들은 '그래서 발전이 없는 것'이라 그들을 평할지 모르지만 월급 50달러로도 충분히 행복해하던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월급 4000달러도 모자르다고 생각하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지.

돈이 전부가 아닌데...그래도 벌어야 한다...하지만...뭐 이런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 속을 오락가락하더구나.

요즘들어 대책없이 낙담하던 삶에 적잖은 화두를 던진 기항지였단다, FREETOWN, CIERRA LEONE.
아마도 당분간 그곳을 잊지 않고 살게될 듯.

아프리카 앙골라와 시에라리온을 거치면서 배의 부식도 바닥이 났었는데 모처럼 신선한 생선과 과일도 싼값에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지. 수십개의 바나나가 매달린 바나나 나뭇가지는 5불, 민어로 보이는 커다란 생선 6마리에 15불, 잘익은 파파야 30kg에 10불, 어른 주먹 두개를 합친듯한 코코넛 10개가 5불에, 여기저기 찌그러져 못생기기는 했어도 커다란 크기에 맛도 일품인 파인애플이 40개에 10불....^^

아무리 답답한 상황이라도 긍정적인 생각 - 예) 맛난 음식 - 으로 그 상황이 모면되는 것을 스스로 느끼면서 여전히 단순한 스스로의 상태(?)도 진단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이번 아프리카 서부 기행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듯 싶구나. ^^ 이래저래 막바지로 달려가는 이번 승선생활의 마무리도 이처럼 의미있게 마칠 수 있기를 스스로 다짐해본다.

완연한 겨울로 들어섰을 서울의 날씨에 굴하지말고 씩씩하게 달려가는 날들이길 기원하마.

2011년 12월 13일,
모리타니아 근해를 지나는 CS DAISY호 선교에서,
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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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Skyraider
Santa Marta, Colombia

뱃사람들이 드나드는 항구에는 다른 동네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 펼쳐지는데 전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그 풍경들은 공통된 모습 하나씩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항구의 여인들'이죠.
긴 항해를 하고 항구로 들어온 뱃사람들에게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 '성욕'을 해결해주는 사람들. 예전 선장님에게 '발기부전 유람단'이라는 놀림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사진이나 찍으러 돌아다니는 저도 가끔 이 사람들을 만나며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죠, 말도 통하지 않는데 옆에 다가와서는 다짜고짜 유혹하려고 애쓰는 이들을 만나는 모습이란.

하지만 많은 수의 선원들이 그 일에 동참(?)하고 있기에 나만 아니라고 핑계를 대려니 궁색하기 이를데 없네요. 다만, 다른 나라 여인네들의 품까지 파고들 깜냥도 없고 그럴 생각도 들지 않아서라는 것이 가장 마땅한 표현일 듯. 그런 힘은 아껴둬야한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ㅎㅎ

제가 승선하고 있는 배(벌크선)는 원자재를 수송하는 특성상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짐을 싣는 항구의 경우, 이른바 후진국이거나 개발도상국인 경우가 많습니다. 주로 수입하는 쪽이 잘사는 쪽이고 수출하는 쪽은 여전히 가난에 허덕이는 나라들인 것이죠. 게다가 남미의 경우, 남성들보다 여성의 성비가 높은데다 여성이 제대로 된 직장을 갖기란 애초에 좋은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지 않았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많은 여성들이 매매춘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콜롬비아의 경우, 남성 직장인의 월평균 수입이 300불 정도라고 하니(우리 배에 올라와 있던 Agent에게 확인한 얘기), 하룻밤에 100불이 가까이 지불되는 매춘에 대한 댓가를 거부하기에는 '가난'이라는 멍에가 너무 크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가톨릭의 영향으로 낙태를 거부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 많은 남미의 경우,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몸을 파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전언을 듣고 나니 그동안 다녔던 멕시코, 페루, 콜롬비아의 항구의 여인들의 삶에 대해 연민의 감정부터 여러가지 마음이 교차됩니다.

아래의 글들은 콜롬비아와 그곳에서 만난 그'항구의 여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열흘동안 항구가 뻔히 보이는 곳에 닻을 내리고 매일 땅만 바라보고 있다가 막상 밖에 나가려니 만사가 귀찮아지는 귀차니즘에 사로 잡혀있는데 3항사와 타수들이 나가자고 꼬신다. 쇼핑센터가서 필요한 물건들도 사고, 오랜만에 육지 음식으로 곱창도 채우자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더군. '단 거 사다 먹어야지!!!'
육지에서는 거들떠도 안보던 과자나 초코렛이 항해 중에 왜 그리 생각나던지....나가서 건포도랑 초코렛, 과자라도 사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나갈 차비를 시작했다. 맞다...치약도 떨어졌지...본선불로 받았던 달러를 좀 챙기고 홀애비 냄새나는 작업복도 벗어버리고 나니 이미 기분은 바깥을 돌아다니는 듯.

넉살좋은 아줌마 삐끼, Lady

항구를 나오자마자 웬 뚱뚱한 아줌마가 우리를 부른다. 자신을 Tourist라 소개하며 관광 가이드를 해주겠노라고 말하는 아주머니. 그녀의 이름은 우습게도 Lady였다. 뭐 스스로를 그렇게 소개했으니 그 이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짧은 영어로라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이 필요했기에(남미 사람들은 영어를 정말 '한 글자'도 못알아듣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동행을 허락했다. 지나고 보니 그녀는 우리에게 따로 수고비를 받지는 않지만 우리가 타는 택시비나, 기념품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택시기사나 상점 주인이 그녀에게 일정 부분 수수료를 내주는 구조로 돌아가더군.
하지만, 그녀에게 가장 큰 수익은 아가씨들을 뱃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받는 '소개비'였다. 하지만, 애초 우리의 목적이 '쇼핑'이었기 때문에 '두 유 원트 세뇨리따?'라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가로젓고 쇼핑센터로 가자고 말했지.
그때 그녀의 얼굴에 스치던 한 줄기 실망의 빛...미안해요 아줌마~

이 콜롬비아 촌구석에도 '까르푸'가 들어와 있어서 그 곳에서 그동안 섭취못한 단 것들을 마음껏 구입하고 시내 중심가(이곳 사람들은 '센트로'라고 부르는)를 거닐고 있으려니 한떼의 아가씨들이 슬그머니 우리 일행들 사이로 끼어든다.
우리의 아줌마와 계약관계로 맺어있을 것이 분명한 남미 아가씨들. 마음이 동한 몇몇이 흥정을 하는 동안 나는 동네를 돌면서 셔터를 눌러댔지.
그 사이 흥정을 마치고 여기저기 흩어진 일행들..쇼핑만 하자더니...-_-;;
그즈음 더위에 지쳐 사진찍는 것도 힘겨워져 버린 난 Lady에게 시원한 맥주를 파는 바를 알려달라 했고 그녀를 따라가 해변가 Marino라는 이름의 노천 바에 앉아 콜롬비아 맥주(이름도 Club Colombia)를 훌쩍이기 시작했다.

쌍둥이 엄마, Salana

내 옆에 앉아 맥주를 축내는 아줌마. -_-;; 뭐 그다지 큰 댓가를 지불할 것은 아니었기에 기꺼이 함께 마시기 시작했지.
그런 와중에도 계속 세뇨리따 필요없냐는 그녀에게 난 'I'm Catholic.'이라고 짧게 말해줬다.
남미 사람 99%가 가톨릭 신자인 상태에서 이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지만 사실 멕시코에서도, 페루에서도 이 말을 하고 나선 그 누구도 더이상 매달리지 않았었지. 콜롬비아 아줌마 Lady 역시, 이 말 한 마디에 자기도 가톨릭 신자라며 반가워하고는 더이상 세뇨리따 이야기는 하지 않더군. 다만, 원하는 바를 못이룬 웬 아가씨가 Lady와 아는 척을 하며 슬그머니 빈자리를 채우고 앉는다. 이런...군 식구가 하나 더 늘었군. ㅠ.ㅜ

그녀의 이름은 Salana, 열여덟에 웬 놈팽이 같은 녀석이 덜컥 임신시킨 바람에 졸지에 쌍둥이 엄마가 된 스물 여섯 살의 싱글맘이었다. 남편을 묻는 내게(사실 Lady가 중간에서 짧은 영어로 통역해준 것이지만)두 손을 벌리고 모르겠다는 제스쳐를 보이는 그녀. '아 이 아가씨도 부나비처럼 여기저기 사고만 치고 떠나버리는 남미 남자들의 피해자구나.'란 생각이 번쩍 들더군. 아이를 낳기도 전에 자기는 모른다며 떠나버린 남자와 달리 그녀는 손쉬운 낙태를 택하지 않고 두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아이 둘 딸린 가난한 남미의 미혼모가 택할 일이라곤 웃음과 몸을 파는 일 밖에 없었다는 어디서 많이 들은 듯한 고단한 이야기를 들으니 차라리 그녀의 삶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주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마저 들더군. 피곤한 모습으로 술 잔을 기울이면서도 아이 이야기를 꺼내니 눈이 번쩍이는 그녀.
여덟살, 말썽꾸러기 둘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타향에 나와 떠도는 그녀 역시 아이들 이야기에 눈을 번쩍이고 잠깐 화색이 도는 ....그녀는 천상 어머니였다.
하지만, 곧 현실로 돌아와 다시 우울해지는 모습으로 말없이 맥주를 넘겼다.

맥주라도 원없이 사주어야겠다는 내 생각과 달리 그녀는 두 어병의 맥주를 마시자마자 '안녕'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아무래도 그저 맥주만 마셔서는 생활이 되지 않을 그녀의 상황이 그려지며 함께 Adios해주었지. 이래저래 고단한 일상을 사는 이들의 만남으로 더 피곤해져가는 나. 슬그머니 배로 돌아갈까하는 생각이 들때 쯤, 또 한 사람의 아가씨가 자리를 채워앉는다.
완전 동네 호구가 된 느낌. -_-;;

대륙전체가 여초현상에 시달리는 남미

작년 이 맘, 페루에 입항했을 때 우리를 나스카까지 안내했던 택시기사 멘도자는 페루의 남녀성비가 3:7이라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약간은 과장이 섞여있을거라 여겼지만 여성 7에 남성 3이라는 성비는 예사롭게 지날 수 없는 이야기로 들리더군. 게다가 우루과이와 페루, 아르헨티나에서 10여년을 보냈던 동료는 이런 이야기도 덧붙혀주었지.
"남미 남자들은 그냥 우리 눈으로 봐도 참 쓰레기 같은 녀석들이 많다.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려놓고 나몰라라 책임지지 않는 놈들이 대부분이지. 남미 어디를 가도 온동네에 생과부들로 넘쳐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어. 예전 함께 배를 탔던 양반하나는 그냥 그 곳에 눌러앉아 그런 아가씨와 살림 차리고 결혼까지 하더라구."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남미 전체가 여초현상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들어온 터라 이런 얘기를 들으며 남자들의 염치없음에 공연히 분노 했었지.
그야말로 '공연한'분노였지만 여초현상이 아닌데도 염치없는 남자들이 많은 우리나라도 생각나더군. -_-;;
어느 나라에서는 남아선호로 인해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여아들이 넘쳐나고 지구반대편에 어느 나라들은 너무 많이 쏟아져나오는 여아때문에 문제가 되고...신이 원래 정해둔 성비를 사람들이 임의로 망쳐놓으면서 공연히 엉뚱한 곳에서 그 성비가 맞춰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려움을 겪을 것이 너무나 뻔한데도 지우지 않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머니들의 모습도 우리의 그것과 많이 다르게 느껴지고.

너무나 당당한 싱글맘 Bella

졸지에 아가씨들 휴게실로 변해버린 노천바 Marino의 내 자리에 슬그머니 자리를 차고 앉은 새로운 아가씨의 이름은 Bella. 역시 스물(!)에 아이 하나를 키우는 싱글맘이었다. 아버지 없는 아이들이 유행처럼 느껴지는 상황이라 적잖게 당황하기 시작했는데 묻지도 않은 내게 Lady를 통해서 별 이야기를 다한다.

'남들보다 싸게 해줄 수 있지만 가슴은 안된다. 가슴은 내 아이를 먹이는 젖이 나오기 때문에 병균에 노출시킬 수 없다. 한 시간 이상은 안된다. 일찍 집에 가야하기 떄문.'이라는 말을 쉬지도 않고 늘어놓는 그녀.

워낙 당황스러운 말들의 연속이라 황당해하는데 Lady가 뭐라고 그녀에게 일러주자 그냥 싱긋 웃으며 맥주나 한 잔 사라고 한다. 아마도 아까 내가 했던 이야기를 재방송 한 듯.
'저 친구 가톨릭이래.' -_-;;

빨리 가야하고 아기 젖도 줘야하는데 맥주는 왜 마시냐는 불멘소리에 '목이 말라서'라고 짧게 답하는 그녀. 갑작스레 젖병에 맥주를 담아 아이를 먹이는 상상이 떠오르더군. 하지만, 그녀 정확히 한 병만 마시고 미련없이 안녕인사다. 손을 흔들어 보내주고 어지러워진 머릿 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무 짓도 하지 않고도 아가씨 둘을 한번에 상대한 듯한 피곤함이 닥쳐오던터라 더 이상 맥주를 마시기도 어려워지더군. 그제서야 테이블을 살펴보니 '아뿔사' 어느새 스무 병을 넘고있는 우리 테이블의 음주량. '이 아줌마야, 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마신거냐?' -_-;;
단 네 병에 술 기운이 오른 나와 어느새 열 병의 맥주를 나발불고 있는 Lady...-_-;; 마침 일을 마치고 돌아온 일행들과 배로 돌아가면서 슬그머니 자리의 술값을 계산하려 하니 Lady가 그냥 가라고 손짓이다.

내 자리에서 마신 것이니 내가 계산하겠다고 하자 10,000페소(우리돈으로 6,500원 정도)짜리 한 장을 가져가며 이거면 되었다고 하는 그녀. 더 실랑이하면 실례가 될듯해서 일어나는 내 주머니로 슬그머니 무엇인가를 밀어넣었다. 바삐 자리를 뜨느라 확인도 하지 않고 배에 돌아왔고, 그제서야 그녀가 넣어준 것이 기억이나 살펴보게 되었지.

Magnificat

루가복음 1장 46절부터 55절까지의 말씀이 빽빽하게 적혀있는 상본(예수님이나 성모님, 혹은 성인들의 그림이 그려져있는 종이. 가톨릭 교회에서 널리 쓰는 양식)이 그녀가 내 주머니로 밀어넣은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하루종일 나를 중심으로 돌던 세상이 모처럼 제자리로 찾아든 느낌이 들었다. 다시 먼길 떠나는 여행자에게 축복을 비는 어느 콜롬비아 아줌마의
마음이 느껴졌다고 할까. 하루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겉돌던 이방인으로 지내다가 마지막엔 오히려 그들에게 축복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니 오히려 술값을 다 내지 못하고 돌아온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Mi alma glorifica Señor.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Y mi espíritu está transportado de gozo en eì Dios Salvador mio.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뛰니
Porque ha puesto los ojos en la baje-za de su esclava; por lo tanto ya desde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ahora me llamarán bienaventurada to-das las generaciones.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연이라고는 없고 누군가가 마련해둔 길을 걸어가며 깨닫는 과정이 삶이란 것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시간을 달려온 듯 하다. 어쩌면 콜롬비아에서 만난 이들의 이야기와 그 마지막도 그 과정 중에 하나였다는 것을 새삼 느껴버린 듯. 긴 여행의 가운데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들도 대양을 가로지르며 하나하나 스쳐 지난다.

모쪼록 그들에게도 신의 가호가 함게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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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kyraider
2008. 6
시청 앞

2008년 6월,
국민들은 가장 현명한 방법으로 '투쟁'에 나선다.
가슴 속의 불을 불의를 향해 던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작은 촛불로
솟아오르는 불꽃을 태워낸 것.

그 촛불의 바다는 분노가 아닌 웃음이, 슬픔이 아닌 즐거움이 함께 했지만
그 불꽃이 향하는 방향마저 잃지는 않았다.

불의를 태우는 작은 불꽃,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작지만 강한 외침.

그렇게 대한민국 백성들은 현명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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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볕좋던 가을날
Nikon D70 / AF-S 1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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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섬

추억을 담는 사람들,
그들은 겨울바람에도 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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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igtländer Bessa-R/ Super Wide Heliar ASPHERICAL 15mm f:4.5 / Kodak TX

베를린을 동서로 가르고 있던 장벽의 일부가 옮겨져 있는 을지로 장교빌딩앞 공터.
그 곳에는 베를린 장벽외에도 베를린의 밤을 100여년 넘게 밝히던 독일 전통의 가스등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장벽보다 그 뒤의 더 높고 넓은 벽이 더 마음 쓰였다.
'전 세계 어느 도시에나 랜드마크 타워 하나쯤은 있다!'며 용산에 올라갈 150층짜리 빌딩의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한때는 20년 넘는 세월을 서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던 3.1빌딩....이젠 31층은 높은 빌딩의 '높'짜도 꺼내지 못할테지.

우리를 가르는 것들은 더 견고해지고 넓어지며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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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3
광화문 노동자대회 현장에서
Canon New F-1 / Kodak Tmax 400

젊어서 맑시스트가 아니라면 바보고, 나이가 들어서도 맑시스트라면 역시 바보라는 이야기가 있다.
'누구나 공평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지향하는 것은 삶에 대한 예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러한 처음 마음들은 스러지기 일쑤고, 그야말로 삶에 쫓기는 그런 순간에
도달한 후에는 예전의 생각들이 꿈처럼 느껴지게 되겠지.

노동자 대회를 누비며 그들의 외침을 담던 비장한 눈빛의 젊은 사진사들.
어느새 이 사진을 찍은 나나, 찍힌 이들이나 두 살의 나이를 더 먹었고, 그만큼의 세월이 다시
지난 후에 '노동자대회'에 나와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다시 만나게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가슴 한 켠에 그 날의 외침이, 그날 담은 현장이 꿈도 아니고, 이상도 아니며, 기어이 우리가
얻어내야할 현실의 현장이었다는 것 만큼은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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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미우나 고우나,

그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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