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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5. 1
명동
엘리슨 레퍼와 그녀의 아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과학모형반'이라는 동아리에 들어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까지도 '프라모델'이라는 것은 '조립식' 혹은 '장난감'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고,
없는 용돈을 외제 키트와 도료, 콤프레서와 피스에 투자하는 우리를 보고 많은 이들이 '이상한 녀석들'이라고 손가락질 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우린 땀흘려 키트를 조립하고, 도료를 칠하고 디오라마를 꾸미면서 행복해했다.
만들어 놓은 다음에는 그 누구도 비웃지 않았으니까.

그 때, 나의 동기들 중에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고 오른손을 전혀 못쓰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프라모델을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한 손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와 같은 뜻이다.
하지만, 그 친구는 그 누구보다도 그 한 손으로 열심히 키트를 조립했고, 진흙을 주물렀으며, 열심히 색칠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솔직히 상황을 모르는 이들의 눈에는 '나도 이만큼은 만들겠다.'는 혹평을 불러오기 일쑤였고, 행여 그 친구가 그런 얘기를 들을까봐 우리는 늘 공동작업이라는 명목하에 그 친구의 작품을 다시 손보고 고쳐주는 일을 자원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녀석의 작품은 그 자체로 이미 아름다웠는데...
그걸 우리는 알고 있었는데....그것에 다시 손을 댔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그 피땀 흐르는 노력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 당시 그 친구가 받을 상처가 아프다는 것만 생각했고 그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작년, 시내버스에 올랐다가 졸지에 타고 있던 버스가 장애우들에게 '점령'된 적이 있었다.
자신들의 손목을 버스 손잡이에 수갑으로 채우며 '우리에게도 이동권을 달라!'고 외치던 그들의 목소리가 그날따라 약속시간에 쫓기던 내게 짜증으로 다가온 적이 있었다. 손님 중에 어느 아저씨가 '여러분들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잖아요?'라고 던진 이야기에 그 분중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하셨다.

'여러분은 이 차가 아니면 다음 차라도 옮겨 타실 수 있지만 저희는 그럴 권리조차 박탈된 사람들입니다.'

버스를 옮겨 타기전에 버스에 들이닥친 건장한 사람들에 의해 그들은 강제로 내려졌고, 그때쯤 나는 약속시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래..우리는 옮겨 탈 수 있는 사람들이지....
이유없이 속에서 울컥하는 생각들이 이어지면서 나는 이 땅은 장애인으로 살기도, 비장애인으로 살기도 버거운 곳임을 절감했다.
우습게도 그 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 글줄이 '생활의 발견'이라는 영화의 대사 한 토막이었다는.

'우리, 사람되긴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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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옛날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은 남산타워였지.

지금은 63빌딩이지만(맞나?), 어찌되었건 서울사는 서울내기들은
이상스럽게도 그 동네랑은 인연이 없기 마련인가봐.

서울에 놀러온 다른 동네 아이들은 63빌딩이나 남산타워 전망대에
잘도 올라갔지만, 서울사는 아이들은 그 곳에 다녀온 아이들이 생각보다
얼마 없었거든.

사는게 그래.
가까이 있는데도 오히려 멀리있는 이들보다 안들여다보게 되고,
웬지 그 가까움만큼 먼 거리를 느끼고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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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많은 이들의 삶을 싣고 인천 송도역과 수원 사이를 달리던
꼬마열차 수인선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1995년
12월 31일 폐선되었다.


레밍 딜레마라는 마케팅 서적이 있습니다.
북극권에 서식하는 설치류 레밍이 벌이는 자살소동에 관한 이야기를 마케팅 기법으로 풀어쓴 책이죠. 사실은 레밍은 지의류만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일정수준으로 개체수가 늘어나면 건너 편 땅으로 옮겨가기 위해 물에 뛰어들곤 합니다. 그 와중에 살아남는 녀석들보단 죽는 녀석들이 더 많기 때문에 그것을 사람들은 ‘자살소동’이라 부르는 것이죠.

책에서 레밍이 물에 뛰어드는 것은 ‘그냥’이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다들 뛰어드니까 거기에 휩쓸려서 물에 뛰어드는 미련한 녀석들로 표현되고 있죠. 당연한 얘기지만 그녀석들 중 조금 깨인 집단이 나오게 됩니다. “왜 우리는 물에 뛰어들까?”라는 의문을 가슴에 담는 녀석들 말이죠. 이것은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나단이나 그의 스승 창과도 맞닿아있는 이야기입니다. 삶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저기 휩쓸려 다니는 ‘습관’이라는 것에 반기를 든 선구자들의 이야기이니까요.

이 책에 대해서 토론 중에 한 친구가 실제 레밍의 습성을 이야기 하면서 ‘자살소동’ 자체가 허구인데 그것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냐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진행을 맡았던 분이 거기서 이런 이야기를 건네 주셨죠.

“가끔은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는 법.”이라는 이야기를.

살면서 사람은 어떤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곤 합니다.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이 그런 때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럼에도 주저하고, 고민하고, 술 마시게 되죠. 아무래도 그런 순간에 나이가 있고, 똑똑하다는 이들이 더더욱 신중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고민거리를 짊어지게 됩니다. 그런 순간에는 오히려 아는 것이 짐이 되고 괴로움이 되는 법이니까요.

가보지도 않은 길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아직 배움이 적다고 느끼는 이라면 ‘겁없이 베팅할 권리’를 가슴 속에 품게 됩니다. 그들에게 아직 세상은 딜러에게 방금 받은 패처럼 따끈따끈 한 것이니까요. 그런 권리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행사하지는 않죠.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한다.”
(루돌프 폰 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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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 목까지

발 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 뿌리가 눕는다


(김수영:1974)

++++++++++++++++++++++++++++++++++++++++++++++


현상소를 하다 보면 수많은 필름을 통해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하게 됩니다..

수없이 많이 들어오는 손님들의 필름을 통해 간절곶과 외도(外島)라는 곳을 처음 알게 되었지요.

비록 늘 현상기 앞에 묶여 있지만호주 뉴질랜드 미국 캐나다 헝가리 체코 프랑스 영국 일본 태국 브라질 칠레... 세상에 안 가본 나라가 없어요 ^^

하지만 때로는 별로 반갑지 않은 장면들도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서 [병원사진]으로 이름 붙여진 그 필름들은 참으로 난감한 것들이었습니다.
주로 사진관 건너편에 있는 외과 병원과 비뇨기과 의원에서 맡겨지는 것인데요이 필름들은 항상 우리를 긴장하게 만듭니다. 모두가 정말 대단한(?) 장면들이니까요.

비뇨기과의 사진들은 그야말로 '엽기'라는 말과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주로 슬라이드 필름인데... 성기확대에 관한 아니 성기학대(?) 라고 이름 붙여질만한 사진들이죠. [남성의 고민]과 관련된 사진입니다.
맞아요! 다 큰 남자들은 늘 그게 고민이죠 후후후...


정상적인 시술 과정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찍어
결국 침소봉대(?)에 이르는 행복 다큐멘터리도 있지만 간혹, 야매(?)로 받은 확대 수술의 부작용과 관련된 치료 과정을 담은 사진은 참으로 처절 하답니다. 왜 남자들은 [남성의 희소식] 앞에 이리도 무모 할까요? ㅋㄷㅋㄷ

한편 외과에서 나온 사진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의사가 경찰 검안의를 겸하는 통에 사망사고 부검 사진이 자주 나옵니다.

제가 사는 해운대 지역의 각종 사망 사고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진이증거용으로 쓰이기 위해 우리 사진관에서 현상/인화됩니다.

오토바이 배달하던 어느 피자 배달원의 죽음, 무슨 고민이 컸는지 20층에서 내린 초등학생의 몸뚱아리, 부부 싸움하고 홧김에 현관에 목을 맨 새댁,

(퇴근해서 현관으로 들어서던 남편이 참 놀랬을것 같더군요)

일주일 전에 손주랑 필름 맡기로 오셨던...

그 할아버지의 얼굴이 보일때는 또 얼마나 가심이 아픈지..휴!~


그리고 버스 바퀴에 깔린 6살 어린이의 으깨진 가슴....

사망후 수개월이 지나도록 발견되지 못한 어느 독거노인의 잔해와 구더기....

아직도 제 머리에는 수많은 사진들의 잔혹한 잔영이 남아 있습니다.

포토퀵 홈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고용한 배달원들은밤이 되면 지킬박사의 하이드씨 처럼 폭주족으로 변신하는 친구들입니다. 이 친구들 참 말을 안들어요.

특히 헬멧 쓰라고 하면...악을 쓰지요. 하지만 그들에게도 [병원사진] 중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뚜껑'이 열린 장면을 보여주면 얼마간은 스스로 헬멧을 쓸 정도 입니다. -.-;;

전에 일하던 현상기사 중에선 [병원 필름]은 접수 봉투 껍데기도 안 만지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젊어서 그랬는지, 비위가 약해서 그랬는지 사진을 챙기다가 어쩌다 병원 사진을 보면 화장실로 달려가 토하기도 했지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사진들입니다.


그러나 제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목을 맨 어느 청년의 주검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허름한 옷차림의 막노동꾼 모습으로 야산에서 목을 맸더군요.

[병원 사진]들 중에서 목을 맨 주검은 오히려 평범한 경우이지만 이건 좀 달랐습니다. 그 청년의 주검 사진을 살펴보다가 [그 사진] 때문에 저는 거의 가슴이 터질 뻔 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떨어지는 눈물이 필름에 얼룩을 만들 정도였으니까요. 눈물이 부끄럽기도 하고 도저히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작업을 잠시 멈추고 저는 상가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땅을 내려보고...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한참을 배회하다가 겨우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그때는 아마도 98년 늦가을이었던 것 같습니다.

계절적으로 노가다 일감이 끊길 무렵이지요.

게다가 IMF 한파가 한창 몰아쳤고, 건설 경기는 말 그대로 곤두박질치던 때였습니다. 의사의 카메라는 나무에 매달린 그 주검과 주변이 함께 보이는 장면부터 시작하여주검으로 다가가 목덜미 부분을 앞 뒤로 클로즈업하고그 나무 주변에 흩어진 신발, 소주병 같은 이런저런 물건들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경찰들이 끈을 풀어 시신를 바닥에 내려놓은 채 옷을 벗깁니다.

질식사임을 확인하기 위해 형사 한 명이 시신의 성기를 마치 치약 짜듯 움켜쥐어 정액 유무를 촬영하고, 시신을 뒤집어 똥이 묻은 항문을 주변을 클로즈업한 사진으로 마무리됩니다.


여기 까지가 여느 검안 사진들의 일률적인 레파토리(?) 입니다.

하지만 그 청년의 주검에는 바로 [그 사진]이 한 컷 더 남아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노가다들이 많이 사용하는, 손바닥에 빨간 고무칠이 된 목장갑을 낀 채 주먹을 꼭 쥐고 있었는데장갑을 벗기고 굳어진 손바닥을 펴자 그 바닥에 글씨가 있었습니다. [손바닥 사진]이 바로 저를 울게한 사진 이었습니다.


그의 검고 거친 손바닥에는 까만 매직으로 글씨가 쓰여져 있었습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힘들어서요


삐뚤삐뚤한 그것은 13 글자의 유언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제 갓 20대 후반의 한 젊은이의 어깨를 이토록 짓눌렀는가?

마지막까지 어머니, 어머니를 생각했건만... 소주 한 병의 술기운을 이기지 못한단 말인가? 생각이 더 이어지지 못하고 그저 막막한 가슴에 눈물만 났습니다.

늙은 어머니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날카로운 상처와 둔중한 아픔을 남기고 가신 당신... 너무한 거 아닙니까?

******************

어느 것 하나 위로가 되지 못하는

삭막한 세상을 홀로 등진 당신! 오늘 당신을 추모 합니다.

제게 남은 시간, 이 아픔을 간직하며 꺼진 연탄재 만큼의 온기라도 나누며 살겠습니다. 미안 합니다.

2003. 9. 10

출처 : 레이소다 덕헌님(http://www.raysoda.com/badak)



솔직히,

고작 한 줄의 글에 이렇게 무너지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습니다.

사진 한 장에 희망이 담길 수도 있지만 그만큼의 절망이 담길 수도 있다는 것, 카메라를 쥐고 있는 그 순간에도 사회적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겠죠.
지금 사진기를 쥐고 계신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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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스튜디오의 1994년 작품인 平成狸合戰ポンポコ(폼포코)는 낙천적이고, 그저 자신의
땅을 지키고 살아가길 바라는 너구리(일본 전래동화에서 흔히 너구리는 변신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들이 자신의 산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공격'해오는 인간들에 대항해
자신들의 방식대로 싸우는 모습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결국, 그들의 '순진한'작전은 처참하게 부서지고, 그 와중에 인간들은 너구리들의 작전을
자신들의 사업의 발판으로 만드는 약싹빠름까지 보여준다.

영화의 절정부에 너구리들의 마지막 힘을 모아 살풍경한 도시 풍경을 예전의 모습으로
돌려놓는 장면에선, 너구리들이나 인간들이나 결국 원하는 것은 같은 것이었음을 보여주지만
결국 너구리들에게 그것은 이미 늦은 일, 변신할 수 없는 너구리들은 그저 도시에 기대어
살아가는 군식구로 전락하고, 변신할 수 있는 너구리들은 인간으로 변하여 살아가게 된다.

영화 마지막에 깔리던 이 곡의 밝음이 오히려 슬프게 들린 경험을 하면서,
영화 속의 너구리나 별 다를바 없이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진정 인간답게 사는 것은 결국 모든 자연이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
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것도 결국 그것이리라.



いつでも誰かが
언제든지 누군가가 - 平成狸合戰ポンポコ Ending Title

언제든지 누군가가 꼭 곁에 있어.
いつでも誰かが きっとそばにいる

생각해 주세요. 멋있는 그 이름을.
思い出しておくれ すてきなその名を

마음이 울적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心がふさいで 何も見えない夜

꼭 누군가가 언제나 곁에 있어.
きっと誰かがいつもそばにいる

태어난 마을을 멀리 떠나있어도
生まれた街を 遠く離れても

잊지 말아 주세요. 그 마을의 바람을
忘れないでおくれ あの街の風を

언제든지 누군가가 꼭 곁에 있어.
いつでも誰かが きっとそばにいる

그래 꼭 네가 언제든 곁에 있어.
そうさきっとおまえが いつもそばにいる

비오는 아침엔 도대체 어떻게 해.
雨の降る朝 いったいどうする

꿈에서 깨어나도 역시 외톨이야.
夢からさめたら やぱり一人かい

언제든지 네가 꼭 옆에 있어.
いつでもおまえが きっとそばにいる

생각해 주세요. 멋있는 그 이름을.
思い出しておくれ すてきなその名を


싸움에서 상처입고 빛이 보이지 않으면
爭いに傷ついて 光が見ないなら

귀를 기울여봐요. 노래가 들려와요.
耳をすましてくれ 歌が聞こえるよ

눈물도 아픔도 언젠가 사라져 가.
淚も痛みも いつか消えてゆく

그래 꼭 너의 웃는 얼굴을 원해.
そうさきっとおまえの 微笑みがほしい


바람부는 밤엔 누군가를 만나고파.
風の吹く夜 誰かにあいたい

꿈 속에서 봤지. 너를 만나고파.
夢に見たのさ おまえにあい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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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만나게 되는 언발란스함.
그 속에 삶의 고단함과 활력이 함께 묻어난다.

BGM : Loudness - So Lon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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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리, 2005년 가을.

사진을 찍다보면,
풍경자체보다도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더 찍고 싶어질 때가 있다.
요즘은 어딜가나 사진을 찍는 이들이 넘치지만, 풍경 속에 들어가서 그것을 담고 있는
사람의 모습도 때로는 풍경의 일부가 될 때가 있는 것이다.


...역시 가장 좋은 피사체는 사람이다.

BGM : King's Singers - Yester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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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가장 기초적인(초보적인)단계가 기복신앙이라고 한다.
무슨 일이 있어야 기도하고, 무슨 일이 닥치기 전에야 기도하는....

초등학교 4학년때 영세를 받고 지금까지 가톨릭 신자로 살아오면서 나만큼은 그런
기복신앙인이 아니라 늘 한결 같은 신자로 남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그 기간이 모두 부끄러운 기간이었다.
일이 있어야 기도하고, 일이 있어야 '제게 이런 고통을 주지 마세요.'라고 기도하는.
신의 존재를 믿으면서도 신앙인답지 않았고,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그 믿음을 행실로
보인 적이 없었다. 내가 잘되는 것이 지상최대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감정을
슬그머니 경건함으로 포장하고 어느 사이엔가 처음의 마음을 잃어버린 채 오늘까지
살고 있다.

"왜 고민하시나요? 기도할 수 있는데..."라는 글귀를 만나고,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는 글을 또 만난 오늘, 난 많이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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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일본에 다녀오면서 찍어온 필름들을 스캔했습니다.
필름을 스캔하는 작업은 솔직히 그다지 편한 작업은 아닙니다. 게다가 이번처럼
스무 롤이 넘는 슬라이드 필름들을 스캔하는 작업은 시간도 시간이지만, 나름 상당히
공이 드는 작업이 되기 마련이죠.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단지 여행지의 사진들에도 공을 들이면서
정말 가까이 있는 서울의 풍경을 제대로 찍어본 적 없음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매일 가는 곳만 가고, 찍기 좋은 것만 찍다보니 정말 가까이 있는 흔한 모습에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모르고 살았음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죠.

정말 소중한 것은 늘 가까이 있다는 것, 여태 그것을 모르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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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는 사람이건, 알라를 믿는 사람이건, 부처를 믿는 사람이건
누구에게나 기댈 하늘은 있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성호를 그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 지구 어느 곳에서는 눈을 뜬 그 순간 메카를 향해 절을 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새벽을 깨우는 목어소리에 합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기원한다, 모쪼록 세상이 서로의 다름을 탓하지 않고 서로 같은 부분에서 화해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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