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Photo By Skyraider
 

신으로부터 쉴새없이 산 꼭대기로 바위를 밀어올리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
오늘도 그런 시지프스들로 세상은 물결친다.

일로 비롯된 속박, 하루 안에 해놓아야할 일의 물결.
여기저기서 발 목을 잡는 약속과 의식의 행렬, 일견 바보처럼 보이는 이러한
일들로 인간사는 세상은 채워져 있었다.

까뮈는 그러한 시지프스도 정상을 향한 투쟁에서 삶에 대한 애착과 희망을
보여준다고 적었지만 난 아직 그런 경지에 오르지 못한 나약한 사람일 따름이다.

어쩔 수 없이 시지프스처럼 살아야할 운명이라면 나도 그런 삶에 대한 갈망과
투쟁을 가지고 살고 싶다. 비록 내가 옮기는 것이 커다란 바위가 아닌 길 가에
구르는 차돌이라도 쉽게,쉽게가 아닌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보고, 한 번이라도
더 되돌아보면서 그 바위덩이만큼의 성찰로 정성껏 정상에 오르고 싶다.


...가끔 내가 포기한 것들이 어설픈 잠을 뒤척이듯 내가 떠나온 그 푸른 바다
가 가장 빛나는 곳은 아닐까...(개구장애 - 엘도라도中)

BGM : 개구장애 - 엘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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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자연생태공원



Too Much Love will Kill You - Queen

I'm just the pieces of the man I used to be
Too many bitter tears
are raining down on me
I'm far away from home
And I've been facing this alone
For much too long

Oh!
I feel like no-one ever told the truth to me
About growing up and
what a struggle it would be
In my tangled state of mind
I've been looking back to find
Where I went wrong

Too much love will kill you
If you can't make up your mind
Torn between the lover
And the love you leave behind
You're headed for disaster
'cos you never read the signs
Too much love will kill you every time

I'm just the shadow of the man I used to be
And it seems like there's no way out of this for me
I used to bring you sunshine
Now all I ever do
is bring you down

How would it be if you were standing in my shoes
Can't you see that it's impossible to choose
No there's no making sense of it
Every way I go I'm bound to lose

Too much love will kill you
Just as sure as none at all

It'll drain the power that's in you
Make you plead and scream and crawl
And the pain will make you crazy
You're the victim of your crime
Too much love will kill you every time

Yeah~
Too much love will kill you
It'll make your life a lie
Yes, too much love will kill you
And you won't understand why
You'd give your life, you'd sell your soul
But here it comes again
Too much love will kill you
In the end...
In the end.



퀸의 마지막 앨범이었던 'Made In Heaven'에 수록되었던 곡으로 당시 타이틀이었던
'Made In Heaven'보다도 먼저 내 귀에 들어왔던 곡이다.

사실 'Made In Heaven'은 1991년 사망한 프레디 머큐리의 유고앨범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이외에도
I Was Born To Love You와 같은 명곡들이 줄지어 포진한 걸작이다.

너무 심한 사랑은 당신을 망치고 말거라는 가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사실
오래되지 않았지만 모르고 들을 때도 감흥은 여전했다.
특히 프레디의 절창에 가려져 있지만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의 연주도 빼어났던
이 곡은 국내에서 모 자동차 회사의 CM으로 사용된바 있다.
(자동차 CM이
망치고 말거야라니이건 대한항공이 비행기 사고로 전멸했던
아니타 커 싱어즈의
Welcome To My WorldCM으로 이용했던 것과 비슷한
실수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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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6
분당

Art Garfunkel - Traveling boy

Wake up, my love, beneath the midday sun,
눈을떠요 나의사랑. 해는 이미 높이 떠있는걸
Alone, once more alone,
혼자 다시 또 혼자이더라도
This travelin' boy was only passing through,
떠도는 이,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But he will always think of you.
그는 항상 당신을 기억할 겁니다

One night of love beside a strange young smile,
낯선 이와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As warm as I have known,
따스함은 가슴깊이 남아
A travelin' boy and only passing through,
떠도는 이, 단지 스쳐지나갈 뿐이지만
But one who'll always think of you.
당신의 기억은 영원할 거예요

Take my place out on the road again,
일어나 다시 길을 떠나요
I must do what I must do,
이제껏 그래온 것 처럼
Yes, I know we were lovers but a drifter discovers...
그것은 분명 사랑이었지만, 방랑자는 알아요

A travelin' boy and only passing through,
떠도는 이, 단지 스쳐지나갈 뿐이지만
But one who'll always think of you.
당신의 기억은 영원할 거예요

Take my place out on the road again,
일어나 다시 길을 떠나요
I must do what I must do,
이제껏 그래온 것 처럼
Yes, I know we were lovers but a drifter discovers...
그것은 분명 사랑이었지만, 방랑자는 알아요
That a perfect love won't always last forever.
완전한 사랑도 항상 영원할순 없음을.

I won't say that I'll be back again
다시 돌아올꺼라고 말하지 못했죠
'Cause time alone will tell,
다만 시간이 말해줄 뿐이니
So no good-byes for one just passing through,
안녕이란 말 없이 잠시 스쳐지나갔지만
But one who'll always think of you.
당신을 항상 기억할테니까요


no good-byes ..
안녕이란 말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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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서 노방선교를 하고 계시던 어느 영감님

전철에서, 버스에서..그리고 지나던 길가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이들이 '예수를 믿으세요.'라고
외치는 사람들이다. 어떤 이들은 무시하고, 어떤 이들은 짜증내고, 어떤 이들은 대놓고 뭐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그런 일들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교회다니는 친구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고 외치고 다니는걸까?"
그의 답변은 간단했다.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으니까."

주일마다 미사를 지내는 내 눈에도 자주 거북하게 느껴지는 그들의 행동이 믿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에 대한 경종이라는 그의 설명 앞에서 나는 잠깐 생각했다.
정말 예수를 믿는 길이란 그런 것일까? 큰 목소리로 '믿어라! 믿어라!'외쳐야만 하는 것일까?
신의 뜻을 인간이 가늠할 수는 없지만, 단지 외치는 것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것처럼
편한 일도 없을거라는 얊팍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 가슴에 못을 박아도, 교회에서 회개하고 눈물 흘리면 죄사함을 받고,
평소에 아무리 죄를 많이 짓고 살았더라도 '예수'를 영접하면 바로 천국에 이른다는
그들의 말이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 것은 '너희는 너희의 믿음을 말로 행하지말고,
행동으로 보여라.'라던 세례자 요한의 외침이 귀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잘못했다면 먼저 잘못한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고 신 앞에서 회개해야 제대로된
것이 아닐까? 예수를 알기 전 죄를 많이 짓고 살았다면 그를 만난 이후엔 죄짓지 않고,
착하게 살려고 애를 써야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입으로만 '예수, 예수..'를 외치지
말고 그 입에 담는 예수처럼 살아보려고 애를 써야 진정 믿음이 아닐까?

크리스트교의 가르침은 서로 사랑하라는 근본적인 명령이 주어져 있다.
예수를 믿지 않으니 마귀의 자식이고, 지옥으로 떨어질 죄인이라고 이웃을 단죄하는 것이
'사랑'하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단군상이 짜증난다고 '몰래(당당하다면 대놓고 해야할 일)'
망치로 부숴버리거나, 불상에 붉은 락카로 '사탄'이라고 적는 행위는 결단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닐 것이다.
그는 이방인에게 '이런 믿음을 유다인들에게서도 본 일이 없다.'라고 말했던 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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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9
청계천
Nikon F3hp / Carl Zeiss ZF 50mm 1.4 / Agfa Vista



I Can See Clearly Now

  Sung By Jimmy Cliff

I can see clearly now that the rain is gone
I can see all obstacles in my way
One are the dark clouds that had me blind
It's gonna be a bright, bright sun-shining day

Yes I can make it now that the pain is gone
All of the bad feeling have disappeared
Here is the rainbow I've been waiting for
It's gonna be a bright, bright sun-shining day

Look all around there's nothing but blue skies
Look straight ahead there's nothing but blue skies

I can see clearly now that the rain is gon
I can see all obstacles in my way
Here is the rainbow I've been waiting for
It's gonna be a bright, bright sun-shining day

비가 그치니까 확실히 볼 수 있어요
내 앞길의 방해물도 다 볼 수 있죠
앞 못보게하던 검은 구름도 있어요
이젠 찬란한, 햇빛 반짝이는 날들만 있어요

아픔이 갔으니 이젠 난 해낼 수 있어요
그런 나쁜 감정들은 사라져 버리고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무지개가 있어요
이젠 찬란한, 햇빛 반짝이는 날들만 있어요

주위를 둘러봐요 파란 하늘 밖에 없어요
앞을 똑바로 봐도 파란 하늘 뿐

비가 그치니까 확실히 볼 수 있어요
내 앞길의 방해물도 다 볼 수 있죠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무지개가 있어요
이젠 찬란한, 햇빛 반짝이는 날들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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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單想


Photo By Skyraider
2006. 1
회현동

Canon New F-1 / FD 50mm 1.4 / Fuji NPH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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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부터 39년까지 개발되었던 라이츠의 Leica III…
요즘에도 이 사진기를 들고 사진찍으러 다니는 이들이 종종 보인다.
디지털 카메라가 하나의 유행처럼 버지면서 큼직한 D-SLR안들고 다니면
'간지'안나오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사람들의 기량은 그다지 발전되지 못했지만 장비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사진의 발전(?)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바디가 알아서 찍는 Program Mode에서 셔터를 눌러대는 이들에게도 구도만 어느정도
나오면 놀라운 현대과학이 알아서 사진을 잡아주니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구식 카메라에 열중하는 이들이 그와 반대편에 모여있다.
21세기로 접어든 이때 20세기초에 개발된 사진기자재들을 가지고 사진을 찍는 이들 얘기지.

디지털이 은염사진기를 대체할거라는 우려섞인 보도에도 코웃음치며 노출계까지 꺼내들고
어렵게 한 장 한 장을 담고 있는 그들 말이다.
사실 기술적으로 진보한 최근의 기술도 예전의 렌즈기술을 능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능가라고 하기보다는 예전에서 발전된 기술이 현재에도 그다지 발전이 없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지만)
이미 20세기초에 나온 기술이 여전히 렌즈 기술을 좌우하고 있는 상태에서 사용의 편의성과
신기술로 무장된 카메라라 하여도 사진 자체의 품질을 좌우하는 렌즈는 거기에서 거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100년전 짜이스가 만들어낸 렌즈보다는 최근 만들어낸 캐논이나 니콘의
렌즈들이 더 나을거라고 믿는 사람이다. 품질에서 낫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한 세월을
거치면서 품질의 저하가 일어났을 거라는 생각 탓이지만.

여전히 내 할아버지 나이의 카메라들이 손자뻘 카메라..
아니 증, 고손자뻘의 카메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요즘,
나는 다시 예전 카메라로 가볼까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어찌되었건....
필름이 나가지 않는다고 난사하는 디카족이나 한 장에 수 천원하는 슬라이드 필름을
바들바들 떨면서 찍는 필카족들이나 모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다.
모쪼록 서로의 세상을 인정하면서 다투지 말고 즐거운 사진생활 하기만을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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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kyraider
2006. 1
회현동
Canon New F-1 / FD 50mm 1.4 / Fuji NPH 400

허름한 도심 아파트가 재개발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사진기를 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말만되면 여기저기 사진찍는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시장바구니를
든 동네사람들보다 더 많이 보였다. 히트 친 어느 영화에 주인공이 지내는 곳으로 그려진
그 곳은 어쩌면 영화가 아니었다면 조용히 사라지는 수 많은 곳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사라짐과 재잘거림과 침묵이 공존하는 곳.
시들어가는 식물들과 어린아이들의 장난감과 굳게 닫힌 빈 집이 공존하는 곳.

늘 생각하지만 사진은 사람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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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kyraider


내가 하늘에 대해 동경을 가지게 된 것에 종교의 역할은 적지 않았다. 가장 먼저 배우던 주기도문조차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였으니까. 어린 시절, 세례를 준비하면서 외우던 기도문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외울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울 아빠는 하늘이 아니라 바다에 계신데 왜 아버지를 하늘에 계시다고 외우고 있을까? 참다못해 수녀님을 붙잡고 질문을 했을 때, 성당마당 성모상과 닮아계시던 수녀님은 내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그가 나를 낳아준 아버지에게도 아버지고, 내게도 아버지가 된다는 종교적인 예를 들어주시면서.


정말 이해해서가 아니라, 분위기가 이해해야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 있다는 것을 나이든 이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거기서도 그래도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지만 요즘 그런 사람들은 정직한 사람이 되지만, 예전에는 그런 행동자체가 튀는 것이거나 지진아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이해하는 척 하기로 마음 먹었고, 무사히 모든 기도문을 외우고 세례를 받는데 성공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천주교 신자셨던 어머니는 형과 나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해주지 않으시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다음 세례를 받게 해주셨다. 당연히 모태신앙이니까 알아서 성당에 나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리에 대해, 그리고 믿음에 대해 어느정도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시기에 세례를 받게 하기 위해 그러셨던 것이지만 사실 결과는 마찬가지 였다고 느낀다.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때가 스스로 알아서 선택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요즘 나는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 이율배반적인 얘기지만 나는 신은 믿되, 교회는 믿지 않는 이상한 상태에 빠져있다. 크리스트교 신자라는 이들의 손에 의해 전쟁이 벌어지고, 목사라는 이의 입에서 파병찬성이라는 이야기가 서슴없이 튀어나오는사랑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칼을 쥐어주는 목자들만 그득한 지금의 교회를 나는 신이 베드로의 반석 위에 세운 교회라 믿고 싶지 않다. 아니, 믿지 않는다. 추기경의 입에서 파병은 불가피라는 말이 나오고 국가보안법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영어로 통성기도를 하면서 한미공조를 찬양하고 파병을 찬성한 목사들의 망발은 용서할 수 있어도, 추기경이 한 말들은 목자로써 입에 담아서는 안될 말이었다, 정말 우리가 미국의 손에 끌려다니는 강아지 신세라 하더라도, 정말 세상이 간첩이 득실거리는 빨갱이 소굴이라 하더라도 그는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어머니, 아버지께 아마 이번 주일에도 끊임없이 함께 교회에 가자는 얘기를 또 듣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바다에 계신 내 아버지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끄덕이며 따라갔던 예전의 전철을 나는 밟지 않을 것이다.


- 지금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존재와 그가 구세주이심을 믿는다. 하지만, 나는 그가 무조건 교회를 따라가다 보면 알게되리라..식의 말씀을 내게 강요하지 않으실거라 역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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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리동네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하던 때,

동네어귀에 붙어있는 후보자들의 포스터를 살펴보다가 낯익은 얼굴들 한 참뒤에 - 기호 8번, 당선과는 상관없는 사람이란걸 첫 눈에 느낄 정도 - 웬지 뼈있는 글귀를 적어두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아저씨가 보였다.

후보자 연설회때도 그 아저씨는 기호1, 2, 3번처럼 동원된 사람들의 박수 갈채도 받지 못했고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면 우루루 빠져나가는 텅빈 공간을 향해 연설을 해야했는데 그때마다 자신의 포스터에 써있던 글귀를 강조했다.

"여러분, 우리가 정치를 멀리하면, 정치도 우리를 멀리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제가 선것은 저의 당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실을 꼭 말씀드리고 정말 될만한 사람, 도움이 될만한 사람을 뽑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치하는 족속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일본처럼 대다수의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별로 관심 없어지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래야만 지들 맘대로 '정치'할 수 있으니까요. 오늘까지 이 나라가 제대로 된 모습의 정치를 모여주지 못한 것은 정치가들이 원래 나쁜 놈들이거나 머리가 돌이어서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의 행동에 대해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뽑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 탓을 할 줄 모르고 남 탓만 하고 있습니다. 제발 귀가 있으시면 듣고 눈이 있으면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이 모양 이 꼴의 나라판은 그들 탓이 아니라 그런 그릇된 자들을 뽑은 우리 탓이란 사실을."

그 해 선거에서 그 아저씨는 8명의 후보중, 6번째의 득표로 낙선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가 그렇게 하고자 했던 말들을 가슴에 담았고, 한참 뒤의 대통령 탄핵에 이은 국민들의 심판을 목도하면서 그의 말이 거짓이나 허황된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었다.

정말 해야할 말이 있을 때, 그 말을 참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우리의 권리를 방치하는 것이고, 나아가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라는 것. 박해를 받고, 아픔을 겪더라도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이들이 있어서 그나마 이 정도의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 그것만은 잊지 않고 살려고 애써보련다.

...교양과정이 끝나고 2학년이 된 후부터 나는 차차 외교학과 학생에서 단순한 문리대생으로 바뀌고 있었다. 교련반대 학생투쟁이 시작되었다. 학원에서 군사훈련을 시행하겠다는 것 역시 '안보논리'의 연장이었고 나에겐 또한 분열의 그리고 증오의 이데올로기였다. 또 나는 학생대중의 일원으로 열심히 뛰었다.

반군사파쇼독재 및 반교련 학생투쟁이 활발히 진행되어, 급기야 본관 강의실이 학생들에게
농성장으로 점령되었을 때 대학측에서는 학생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교수학생간담회'
열었다. 각 과별로 진행되었으므로 나는 당연히 외교학과의 '교수학생간담회'에 참석하였다.

간담회는 “어떻게 하면 외무직 시험에 패스할 수 있는가?”와 “외무직 시험과목이 외교학과보다
법대 행정학과 학생들에게 더 유리하게 되어 있는데 이를 시정해야 되지 않겠느냐?”라는 불만과
질문으로 시작되었고 그 답변으로 끝났다. 교수도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학생투쟁으로 갖게된 '교수학생간담회'였는데 외교학과의 그것은
'외무직 시험 합격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된 것이다.

나 역시 외교관이 돼 보겠다는 꿈을 가진 적이 있었기에 그 욕구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었다.

학생들은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교수들까지 그 장단에 춤을 추다니.
적어도 당시의 이슈였던 파시즘과 대학 내의 군사훈련에 대하여 자신들의 견해라도 밝혔어야
옳았다.

그리고 나서 “하지만...... 아직은 공부할 때다”했으면 '교수학생간담회'에 임한 체면을 세울 수 있었다. 나는 아직 2학년인 주제에 그리고 제 깐엔 무슨 학생운동을 그리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는 자격지심에 불쑥 뛰어들어 문제 제기도 못하고 3,4학년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학생투쟁의 현안문제에 대한 질문이 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교수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때문에 간담회장을 박차고 일어나 나오지도 못하고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된 간담회 내내 나는 '개똥 세 개'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개똥 세 개.

내가 아직 어렸을 때, 나의 할아버지께선 나에게 옛날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대부분 잊었지만 잊혀지지 않는 것 중에 이런 얘기가 있다. 당신께서 중국의 노신을 읽으시고
좀 바꾸어 말씀하신 것인지 아니면 우리 옛이야기에 실제로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여튼 얘기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옛날에 서당선생이 삼형제를 가르쳤겠다. 어느 날 서당선생은 삼형제에게 차례대로 장래
희망을 말해보라고 했겠다. 맏형이 말하기를 나는 커서 정승이 되고 싶다고 하니 선생이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그럼 그렇지
하고 칭찬했겠다.

둘째형이 말하기를 나는 커서 장군이 되고 싶다고 했겠다. 이 말에 서당선생은 역시 흡족한
표정을 짓고 그럼 그렇지 사내 대장부는 포부가 커야지 했겠다.

막내에게 물으니 잠깐 생각하더니 저는
장래 희망은 그만두고 개똥 세 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했겠다. 표정이 언짢아진 서당선생이 그건 왜? 하고 당연히 물을 수밖에.

막내 말하기를, 나보다 글읽기를 싫어하는 맏형이 정승이 되겠다고 큰소리를 치니 개똥 한 개를
먹이고 싶고 또 나보다도 겁쟁이인 둘째형이 장군이 되겠다고 큰소리치니 개똥 한 개를 먹이고 싶고......


여기까지 말한 막내가 우물쭈물하니 서당선생이 일그러진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겠다.
그럼 마지막 한 개는? 하고.

여기까지 말씀하신 할아버님께선 나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세화야, 막내가 뭐라고 말했겠니?”하고.
나는 어린 나이에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거야 서당선생 먹으라고 했겠지요, 뭐.”
“왜 그러냐?”

“그거야 맏형과 둘째형의 그 엉터리 같은 말을 듣고 좋아했으니까 그렇지요.”
“그래 네 말이 옳다. 얘기는 거기서 끝나지. 그런데 만약 네가 그 막내였다면 그 말을
서당선생에게
할 수 있었겠냐?”

어렸던 나는 그때 말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자 할아버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화야, 네가 앞으로 그 말을 못하게 되면 세 개째의 개똥은 네 차지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나는 커가면서 세 개째의 개똥을 내가 먹어야 한다는 것을 자주 인정해야 했다.
내가 실존의 의미를, 그리고 리스먼의 자기지향을 생각할 때도 이 할아버님의 말씀이
항상 함께 있었다.

나는 '교수학생간담회'장을 나서며 세 개째의 개똥이 나의 차지라는 것을 인정했다.
한편, 교수들은 개똥을 먹는 대신에 곧 장관과 국회의원이 되었다.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었다.

그 중에는 박정희의 지명을 받아 유정회의 국회의원이 된 사람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광주항쟁 때 전두환의 부름을 받아 국보위원인가가 된 사람도 있었다.
학문이 미쳤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미쳤던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학문도 나도 미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문제의식이 없던, 혹은 문제의식을 기피했던 교수들의 개똥을 먹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홍세화 - 개똥 세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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