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Photo By Skyraider
2006. 1
봉평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분다, 완연한 겨울.

  
트랙백   |  댓글   |


Photo By Skyraider
2006. 11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지

1890년 7 26,

고종의 시의였던 의료선교사 존 헤론이 이질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이 땅에 그 몸을 뉘이면서 당시까지 오지나 다름없던 조선 땅에 오직 '예수'라는
두 이름을 위해 들어와 있던 선교사들도 하나, 둘 묻히기 시작한 곳이 바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지다.

양화진은 바로 그들이 들어오기 직전 수천, 수만의 천주교신자들이 단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무수히 죽임을 당했던 공간이니 애초 그들의 안식처가 되기
전부터 크리스트교 신자들의 피가 맺힌 성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양화진에는 천주교의 절두산 순교성지와 개신교 선교사묘지가
서로 이웃하고 마당 하나를 사이에 놓고 함께 자리하고 있다.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양화진은 내가 가장 자주 찾는 공간 중 하나가 되었다.
스스로가 예수를 믿는 신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고향도 아닌
이역만리 외딴 나라에 십자가를 짊어지고 찾아와 마침내 그 십자가를 내려놓고
자신들의 몸까지 뉘인 그들의 모습에서 용기를 찾고 싶기 때문일까
어찌되었건 인생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묘지에서 새로운 출발을
꿈꿀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신께서 주신 선물이라 여겨진다.


See, my servant shall prosper, he shall be raised high and greatly exalted.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그는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해지리라.
(이사야 52 :13)


BGM : 부흥2003 -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트랙백   |  댓글   |
Photo By Skyraider
2006. 11. 11
올림픽공원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곳,
그 곳에 서다.

  
트랙백   |  댓글   |

Photo By Skyraider
2006. 11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지

겨울의 문 앞에서 나무등걸에 피어난 봄꽃을 만난다.
영하를 오르내리는 초겨울의 날씨 속에서 아마 녀석은 안간힘을 쓰고 꽃을
피웠을 것이다. 하지만, 가혹한 삭풍이 녀석을 비켜가주지는 않을터,
아마도 다시 서리가 내릴 무렵이면 녀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다시 날이 풀릴 때, 녀석은...
아니 녀석의 자손은 다시 움을 틔우고 꽃을 피울 것이란걸.


..모든 일은 시작과 마지막이 있지만 결국 그 둘은 맞닿아있었다.
최후의 순간이 새로운 시작의 순간이며, 최초가 결국 최후로 통한다는 것.
묘지에 피어난 이름없는 꽃처럼 모든 것이 끝난 순간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순전히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일 뿐이다.
실상,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마종기 - 바람의 말


  
트랙백   |  댓글   |


Photo By Skyraider

그날 불멸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낡은 태양의 오후를 지나,
또 무수한 상점들을 지나 거기에 갔으므로 너무나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등 뒤로는 음악 같은 나뭇잎들이 뚝뚝 떨어지고,
서러운 풍경의 저녁이 짐승처럼 다가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성냥을 꺼내어 한 점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영원은 그렇게 본질적인 불꽃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한순간 타오르기도 한다

그날 불멸이 나를 찾아왔다, 아니 그날 내가 불멸을 찾아 나섰는지도 모른다,
뿌연 공기들을 헤치며 이 지상에는 없는 시간을 찾아 나는 나섰다
내가 한 마리의 식물처럼 고요했던 시간, 내가 한 그루의 짐승처럼 그렇게 타올랐던 시간,
바람과 불의 시간을 지나 공기의 정원에서
내가 얼음꽃을 피워 올렸던 그 단단한 침묵의 시간을 찾아 나는 나섰다

그런데 그날 불멸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늘 불멸을 꿈꾸었지만, 그렇게 불멸을 만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으므로,
나는 오히려 불멸이 너무나 낯설었는데, 어쨌든 불멸은 내가 갔던 거기에,
그렇게 당도해 있었다

네가 불멸이니, 그때 너무나 당황했으므로 나는 속으로 그렇게 물어 보았는지도 모른다
불멸이 이제 나에게 당도했으므로 나는 어찌할 줄을 모른다,
오랫동안 불멸을 꿈꾸어 왔지만 불멸이 나에게 당도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불멸 앞에서 이 세계의 본질적인 사랑을 생각한다
불멸도, 사랑도, 내 생각으로는 그저 저 스스로 존재하는 그 무엇일 뿐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나에게 또 불멸의 아름다운 시를 쓰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쓰지 않는다,
불멸의 아름다움이란, 느끼는 자의 내면 속에서 수시로 숨쉬고 존재하며,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시가 아니다
시가 아니므로 불멸이 아니고 불멸이 아니므로, 이것은 불멸의 시가 된다
그렇다, 당신이 이 글에서 시를 읽어내려고 했다면 당신은 이미 시인이다,
그러나 시 아닌 그 무엇을 읽어냈다면 이미 당신은 또 하나의 불멸인 것이다

그대를 찾아 나섰다가 나는 불멸을 만났다,
그러나 나는 아직 불멸이 몹시도 불편하고 어색하다
불멸이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불멸이 아니었지만,
나도 언젠가는 내가 꿈꾸던 불멸에 닿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저 별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므로,
나도 언젠가는 불멸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먼 훗날,
태양이 식어가는 낡고 오래된 천막같은 밤하늘의 모퉁이에서
서러운 별똥별로 다시 만난다 하더라도,
나는 아직 살아 있으므로, 나는 불멸이 아니라 오래도록 너의 음악이다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사랑이 아니더라도 나를 꿈꾸어다오

박정대 -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그때까지 사랑이여, 나를 잊지 말고 꼭 기억해다오, 제발.

  
트랙백   |  댓글   |

Photo By Skyraider
2005. 1
전라남도 담양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but the darkness has not understood it."

  
트랙백   |  댓글   |


비슷하지만 다른.

우리는 같은 시간 속에서 영영 마주 볼 수 밖에 없는 운명.
슬픈 운명이라 말하지 마라.
애초부터 우린 그런 운명이었으니.

그저 바라보고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운명이려니.

2003.7.28
잠실대교에서 바라본 테크노마트와 올림픽대교
Hasselblad Xpan

Photo By Skyraider

  
트랙백   |  댓글   |

Photo By Skyraider

2006. 10

해운대

Nikon F100 / ZF 50mm 1.4 Planar / Fuji Trebi

누구나 느끼는 감정 하나.

큰 행사가 지나고 나면 허탈해지고 우울해지는 일.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고,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게 행사가 끝났다.

지나고 나서 남은 사진이 산더미지만, 실제 그곳에서 숨쉬던 순간들은 돌아오지

않음이 아쉬워지고 서글퍼진다.

내년을 기다리며.

  
트랙백   |  댓글   |


Photo By Skyraider

소래포구, 2005년 여름.



어떤 대화는 서로 말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단지, 눈만 바라봐도 대화가 되고 뜻을 알아차리는 단계.

어떤 이는 그걸 사랑이라고 하지만틀렸다.

말이 필요 없어도 말을 해주고, 눈빛이 맞았어도 스스로에게 번거로운

대화를 기꺼이 마다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헤어지는 가장 큰 이유가 소통의 단절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BGM : 넌 내게 반했어 - East River(노브레인 : 라디오스타 ost중)

  
트랙백   |  댓글   |


Photo By Skyraider

2006. 10

해운대

1996년, 그 시작을 알렸던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대박난 이들은 개막작인 비밀과 거짓말을 만들었던 마이크 리 감독도 아니었고, 폐막작 무산의 비구름을 만들었던 장밍도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으로 일본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한 최초의 행사(?)에서 많은 관객들은 그동안 메니아들 사이에서나 떠돌던 일본의 영화를 직접 스크린에서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이후로도 일본영화들은 영화제가 아닌 일반관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던 일반극장엔 걸리지 못했다. 1998년 10월, 문화 1차 개방 이전까지는.

1998년, 3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와이 슈운지(岩井俊二)라는 당연히 생소한(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아니었겠지만) 일본 출신의 감독이 만들었던 4월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수상작 한 부분에 그 이름을 올리면서 그 해에는 폐막작도 역시 일본영화였던 간장선생이었다 그의 인기는 더 이상 일본영화를 즐기던 몇몇 메니아들이 아닌 일반 관객들에게도 퍼지기 시작했다. 1999년 1월, 제작된 지 4년만에 개봉된 러브레터는 서울에서만 64만, 전국에서 1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일약 그를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게 되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나 제임스 카메론, 아니면 서극이나 오우삼만을 외국 감독으로 알던 관객들에게 그 이름을 각인시킨 몇 안되는 일본인인 그.

2006년 10월, 그는 감독이 아닌 제작자로 부산을 찾았다.

  
트랙백   |  댓글   |
 이전  1···345678910   다음 

최근댓글
최근트랙백
fotowall :: ncloud RSS Feeds today :    yesterday :
tot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