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스파게티를 제삿상에 올리는 집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사실 집안이 개신교와 가톨릭이 뒤섞여있는 상황에서 제사를 지낸다는 것부터가 '믿는 이'들에게는 욕먹을 일일지 모르지만, 이북에서 어렵사리 월남한 집안이다보니 고생고생해서 집안을 남한에서 다시 일으킨 할아버지 세대에 대한 감정은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차려도 모자르기만한 상황이라죠. 이런 상황에서 제삿상을 빼는 것은 우리에겐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사촌동생중에 은성이라는 녀석이 있습니다.
어린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꽤 오랜기간 방황하며 아버지와 집안 식구들 걱정을 시킨 녀석이죠.
학교도 중간에 때려치우고 멀리 지방을 돌며 산전수전 공중전을 어린시절에 겪은 - 저는 애늙은이라고 놀립니다만 - 과거를 가지고 있는 녀석이죠. 녀석이 오랜 방황 끝에 맘을 붙힌 것이 이탈리아 요리..그 중에서도 파스타와 스파게티입니다.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싫은 내색 한 번 보이지 않던 녀석...방황이 긴 사람은 맘을 잡게되면 그 누구보다도 변치않는 줏대를 가지게 된다는 옛말처럼 녀석은 그런 고생중에도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수업을 쌓았습니다.

어느새 주방에서 보낸 시간만 10여년...꽤 유명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주방장으로 자리잡은 녀석이 추석날 커다란 팬과 이런저런 재료를 차에 싣고 나타났습니다.

추석음식 장만이 바쁜 집안 구석에서 녀석이 만들기 시작한 것은 두 가지의 스파게티였죠.
와인소스의 봉골레와...크림소스의 까르보나라....
원칙이 아닌 것은 알지만 할아버지 제삿상에 자기가 만든 음식을 올리고 싶다고 말하는 녀석 앞에서 가족들은 그저 감격했습니다. 땀을 흘리며 커다란 접시에 담아나오는 스파게티.....당연히 할아버지앞에 차려진 상에 올랐고, 그 날 식구들도 원없이 정통 스파게티의 맛을 보았죠.

추석 제삿상에 오른 스파게티...
어쩌면 우리 가족들도 그런 엉뚱함 속에서 더욱 굳건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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