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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을 지나 중년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의 나이까지 나를 지배하는 몇 가지가 있다면 빠지지 않는 것이 ‘야구’다. 어린 시절부터 실제로 즐기는 것과 야구장을 찾는 것, 그 모두를 즐겼던 탓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 이젠 없으면 못사는 그런 경지(?)에 까지 이르렀지. 예전, 숙부님께서 해주신 말씀처럼 “둥근 공을 좋아하는 사람은, 둥근 것은 모두 좋아한다.”고 했던 약간은 억지 섞인 얘기처럼 이젠 내 체형마저 둥근 공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낀다. 물론 그것이 야구를 좋아하는 탓은 아닐테지만.



재작년, 보스턴은 지긋지긋한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맞수 양키즈와의 7전 4선승제 경기에서 3패로 밀리다 4연승을 올리는 기가 막힌 리그 챔피언쉽의 여세를 몰아 90년 가까이 지긋지긋하게 달라 붙어있던 저주를 후련하게 날려버린 것이지. 그때, 레드삭스 선수들이 했던 말들은 모두 ‘저주를 깨고 우승해서 기쁘다.’는 말들이 그 골자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들의 말에서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한 것이 ‘팬들에게 이 영광을!’이라는 아주 상투적이면서도 ‘당연한’ 맨트였다. 사실, 90년을 한결 같이 도저히 깰 수 없어보였던 저주와 함께 싸워준 ‘RED SOX FAN'들이야 말로 그런 찬사를 듣는 것이 당연했다.


영화 ‘날 미치게하는 남자’는 바로 그들에 관한 이야기다. 어려서부터 야구밖에 몰랐던 한 청년이 야구냐 사랑이냐를 고민하다가 결국 둘 다 쟁취하게 된다는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사뭇 드라마틱 하다. - 물론 이 작품의 원작인 영국출신 작가 닉 혼비의 ‘Fever Pitch'에서 그려지는 것은 사실 야구가 아닌 축구고, 레드삭스가 아닌 아스날이다. 뿐만 아니라 아스날은 레드삭스처럼 90년간의 저주에 시달린 팀은 더더욱 아니다. 1886년 창단 후, 지금까지 11회에 걸쳐 자국의 1부 리그를 주름 잡았으며(이는 리버풀FC, 멘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우승기록이다) 최근에도 여전히 우승후보로 빠짐없이 거론되는 강팀이다. -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는 더없이 다정다감하고 멋진 남자가 시즌만 시작되면 도대체 철없는 ’훌리건‘으로 둔갑한다. 야구 외에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으며(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가장 즐기는 일 세 가지를 RED SOX의 경기, SEX, 숨쉬기를 꼽는다. -.-;;) 여자친구가 파울볼에 맞아 쓰러지는데도 공을 잡은 사람과 악수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 남자...하지만, 영화 서두에서 감독 페럴리 형제들이 깔아둔 말은 그럼에도 신이 창조한 가장 위대한 창조물 중 하나로 그를 꼽아둔 것이다.
바로 ’RED SOX FAN'이라고.


어쨌든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여자친구냐 RED SOX냐를 고민하다가 결국 사랑을 택하고, 그가 못마땅하던 여자친구는 그를 사랑하기 위해서 기꺼이 RED SOX FAN으로의 변신을 선택한다. 결국 그들은 2004년, AMAZING SOX의 활약을 펜웨이 파크에서 맞이하게되고 영화는 끝난다.


보스턴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친구는 말했다. 시즌만 되면 보스턴이란 도시 전체가 ‘미치는 것’ 같다고. 특히 시즌 중에도 양키즈를 꺾은 날에는 도시가 들썩거리고, 반대로 패한 날은 우울한 분위기가 도시를 감싼다고. 결국 스스로도 ‘RED SOX FAN'이 되어버린 친구 역시 재작년의 경험은 너무나 즐거웠다고 귀띔했다. 보스턴이 아닌 서울에서, 펜웨이 파크가 아닌 TV로 지켜봤어도 정말 짜릿한 경험이었다고.


작년, 곰들은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 RED SOX팬들이 YANKEES를 싫어하는 유사한 이유로 - 사자들에게 스윕당하고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내가 그래도 곰들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작년 플레이오프에서 주저앉은 보스턴의 그 악동(?)들도 다시 올해를 기약할 것이다. 곰들이나 RED SOX나 오해, 다시 도약하길 바라며 두서없는 글을 접는다. ^^


(현재 보스턴은 지긋지긋한 양키즈에 이어 2위, 곰들은 5위에 머물고 있다. 그래도..^^
그들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팬이니까...)


BGM : Dawm Yankees - High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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