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현인 선생님과 '마법의 성'

Skyraider 2006. 11. 6. 23:27
 
부산 영도대교 입구 영도 경찰서 앞에 자리한
가수 현인(1919~2002)의 '굳세어라 금순아'노래비.


1.

우리세대에게는 그저 지나간 가수로 알려져 있는 분인 故 현인 선생님.

지금도 가요무대에서는 그의 노래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물론, 그가 지난 2002년 작고하면서 그의 모습은 기록화면에서나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가 남긴 ‘신라의 달밤’ ‘비내리는 고모령’등의 대표곡들은 후배가수들이나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입에서 구전되고 있다.


2.

‘마법의 성’이라는 곡이 있었다.

하긴, 여전히 노래방 인기순위의 상위권을 점하고 있고 어른이나 젊은 친구들이나
많이 부르는 곡이지.
1994년 7월 The Classic의 앨범을 통해 발표된 이 곡은 원곡만큼이나 당시 소년이었던 백동우의 목소리로도 더욱 유명해진 곡이다. 서정적인 가사와 감미로운 곡으로 공전의 히트를 했고 앞으로도 당분간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을 명곡이지.


3.

내가 지금 시작할 이야기는 가수 현인과 ‘마법의 성’이라는 곡에 얽힌 이야기다.

어쩌면 “웬 생뚱맞은 이야기냐?”고 물어볼 이들도 많을 것 같지만, 실제 이 일을
이야기 해주었던 분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듣던 모든 이들이 잠시 숙연해졌었다.
우리가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단정하거나 할아버지가 되신 분들에게는 ‘낭만’도
없을거라고 생각한 것을 고치는 계기가 되었었으니까.


4.

때는 1994년,

당시 ‘젊음의 행진’의 작가를 맡고 있던 김모씨는 담당PD와 함께 프로그램 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현인선생님께 마법의 성을 부탁해보면 어떨까?’라는 기발한
발상을 하게 되었다. 당연히 어울리지 않는다, 생뚱맞다...등등의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일단 한 번 섭외를 드려보자는 데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마침 가요무대의 녹화차
방송국을 찾은 선생님께 직접 청을 드리게 되었단다.
의외로 노래를 알고 계시던 선생님, 처음에는 노인네에게 어울리지 않는 노래라고
고사를 하셨지만 ‘악보를 구해달라.’는 우호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젊음의 행진’에 현인선생님이 나와 ‘마법의 성’을 부른다...생각만해도 재미있는 장면이 그려지는 순간.


얼마 후, 선생님은 직접 제작진에게 “꼭 이노래를 부르고 싶으니 연습할 시간을 보름만 달라.”는 전언을 해오셨고, 그 때 꼭 이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신 선생님의 사연을 그들은 듣게 되었단다.


5.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찍이 서울에서 명문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現 경복고교)를 졸업한 선생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업가가 되어달라는 가족들의 열망을 등에 업고  일본으로 유학길을 떠났다. 하지만, 가족들 몰래 그가 입학한 학교는 우에노음악학교  성악과(現 동경예술대학).
당시까지만 해도 음악을 전공하는 것은 ‘딴따라’나 ‘날라리’로 여기던 시절이라 그의
동경생활은 집에는 도저히 알릴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토록 공부하고 싶었던 음악을 하는 그의 마음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행복했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그 곳에서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당시 미국과 전쟁 중이던 일본은 태평양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고,
그 어느 전쟁이 그렇듯 전면전과 심리전을 병행하고 있었는데 그가 일본에서 만난
여인은 바로 그 심리전 중 하나인 선무방송을 담당하고 있던 도쿄 로즈라 불리우던
일본인 아나운서였다.


행복한 시절은 꼭 가장 행복한 시절에 끝난다고 했던가.
1942년 선생이 학교를 졸업하였을 때, 비로소 선생의 부모님은 그가 음악학교를
다녔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대노하여 한국으로 선생을 불러들이게 된다. 돌아갈 수도,
안 갈수도 없는 상황...결국 선생은 그녀와 눈물의 이별을 하게 되었고, 귀국 직후
일제의 징용을 피해 상해로 피신하게 되면서 영영 만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 말을 마치시고 혼자서 악보를 넘기시며 노래를 연습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섭외를 했던 작가나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PD나 모두 숙연해졌다는 부분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리도 이야기를 듣는 중에 잠시나마 ‘신라의 달밤’과 ‘마법의 성’을
비교해가며 웃었던 모습이 부끄러워 졌었다.


6.

선생님이 부르는 마법의 성은 얼마 후, 갑작스레 젊음의 행진이 문을 닫게 되면서
없던 일이 되었고, 그나마 선생 역시 세상을 떠나시면서 이젠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게 되고 말았지만 아직도 내게는 어느 노가수의 로맨스와 함께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고 있다.


BGM : 백동우 - 마법의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