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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1 :: Luanda에서


도시 곳곳에 30층이 훌쩍 넘는 건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올라가고 있는 루완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산업화'의 그림자가 그 건물의 높이만큼 드리워져 보입니다.

  부정적인 시각일지도 모르지만 주변에 있던 배들과 교신하다보니 상륙했다가 당한 이런저런 봉변들과 구걸하는 이들의 물결이 도시 주변에 넘실댄다는 이야기들만 떠들더군요. 예전, 우리나라도 겪었을, 하지만 지금은 깨끗히 잊어버린 그런 악몽들이 아직도 이곳에서는 진행형입니다.

  저희가 접안한 시멘트 부두는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TIDE는 고저차가 1미터 정도 밖에 나지 않지만 조류가 강해서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금새 배가 부두에서 떨어지는 봉변을 만나게 된다더군요.

  사막 기후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해안사구의 모습, 특히 그 꼭대기에 자리한 바오밥 나무를 보니 이곳이 아프리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제 눈에는 거대한 브로콜리처럼 보이는 바오밥 나무의 모습은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 처럼 별을 부숴버릴 정도로 엄청나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볼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네요. ^^  이 주변에서 볼 것이라고는 저 나무 하나뿐인듯 싶습니다만.

 

Port Luanda, Angola
Photo By Skyraider
2011.11

  어느새 접안 보름째에 접어듭니다만 49,000톤의 짐 중 30,000톤밖에 풀지 못했습니다.
딱 봐도 상태 안좋아보이는 컨베이어가 매일 문제를 일으키는데다 우기에 접어든 앙골라의 날씨 탓에 짐을 풀만 하면 내리는 비에 방해를 받고 있죠.  

 이렇듯 하역작업이 지지부진하여 일이 바삐 진행되는 다른 포트보다는 마음을 비우고 지내기로 한다면 심신 모두가 편한 곳이 되겠지만, 상륙이 자유로운 깔끔한 포트도 아니고 부식 보급도 안되는 곳인데다, 싣고 온 화물조차 시멘트이고 보니 사방팔방이 죄다 먼지구덩이로 다들 어서어서 출항하기만을 기다리는 심정들입니다.  먼지 탓에 사진기를 꺼내기가 두려운 것도 좀 그렇고요. 

 접안중의 이당직제로 돌아가는 일상 탓에 항해때보다 심적으로는 더 많이 피곤하고, 잠을 자는 시간도 불규칙하게 되어 여기저기 탈이 나는 곳이 생기고 있습니다. 첨에 몇몇 선원들이 피부 트러블을 호소했었는데 저 역시도 시멘트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 피부발진이 일어나서 그 가려움증으로 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처음 지은 집에 들어간 이들이 호소하는 새집증후군과 흡사해보이는(어쩌면 동일한)이 증상에 대해 준비된 약품이라고는 가려움증을 완화시켜주는 연고제뿐이라 빨리 짐풀고 나가기만을 더더욱 기다리게 됩니다. 

Luanda Cement Jetty
Photo By Skyraider


 긴 하역작업이 좋은 것도 그것을 뒷받침해줄 좋은 화물이나 항만의 사정이 받춰주어야 좋은 것이지 이런 거지같은(?)상황에서는 몸은 몸대로 부대끼고 스트레스는 또 스트레스로 받는 악순환의 연속이더라구요. 정말 딱 죽을 지경입니다. ㅠ.ㅜ

  저만 가려움증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기관장님부터 이항사에 갑판장까지...거기다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갑판부원들까지 가려움증의 대열에 들어섰으니 이쯤되면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보여지네요.

  예전 TV에서 시멘트의 폐해에 대해 고발한 고발성 프로그램 속에서 국내 업체들이 석회석뿐만 아니라 폐타이어와 아스팔트까지 동원해서 시멘트의 양을 늘이는 행태를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이제서야 새삼 그 악영향을 직접 몸으로 느끼는 중입니다. -_-;; 

 그나마 JETTY주변에 어선들이 출몰할 정도로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곳이라 하루에 한 마리는 꼭 대형 도미가 잡혀 올라와 미식가들의 입을 즐겁게 하고 있어서(어젯밤에도 OS가 1미터 가까이 되는 참돔을 한 시간 가까이의 실랑이 끝에 잡아 올렸습니다. 조리장이 회를 만들어 내놓고 탕까지 끓여내서 맛나게 한끼 식사를 마칠 수 있었죠)그나마 무료하고 짜증스러운 상황에 청량제가 되고 있죠.

  손바닥 둘을 합친듯한 크기의 고등어는 거의 한 시간이면 큰 페인트 캔 하나를 채울 정도로 올라오니 낚시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괜찮은 포인트라고 낚시광 기관장님이 입에 침이 마르시더군요. 우리나라의 고등어와 정말 완전 판박이로 똑같이 생긴 탓에 물고기만 보면 여기가 아프리카인지 우리나라인지 헷갈릴 정도랍니다. ^^

  아직도 용선주는 차항에 대한 정보를 보내주지 않아서(정보를 보내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저들도 아직 확정된 스캐줄이 안나와서 그런 것이겠지만요)다들 그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년 10월에 처녀 항해를 시작한 배라 1년 계약으로 승선했던 인도네시아 선원들 전원이 다음 포트에서 하선을 진행하게 되고 사관들의 경우도 일항사부터 저, 지난 항차에 승선한 삼기사를 제외한 기관사 전원이 두 달 사이에 하선을 진행하기로 되어있어 이곳의 일이 마무리되고 찾아갈 다음 포트가 대부분의 선원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곳이 될 예정이거든요.

 처음에는 이틀거리에 자리한 가봉의 OWENDO가 차항의 목적지가 될 것으로 알려주더니 그것이 어그러졌는지 브라질을 들러 극동을 향하는 코스도 고려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브라질에서 극동을 향하는 코스가 가장 해피한 셈이죠. ^^ 브라질까지 가는데 12일, 웨이팅과 선적작업 10일, 브라질에서 극동으로 되돌아 오는데 40여일...정확히 두 달이 소요되는 장기 항차...이것이 마무리 될 쯤이면 바로 귀국행에 오를 수 있게 될테니까요.  

 올해는 겨울을 서울에서 맞이할 수 있을 듯 해서 몹시 기대됩니다. ^^ 지난 3년 동안 겨울은 구경도 못하고 더운 곳만 주구장창 돌아다녔는데.. 이번에 귀국하면 그동안 벼르던 제주도 올레길 도보 종단도 시도할 생각이죠. ^^ 청춘사업도 이번에야말로 가부간 결정을 낼 생각입니다. 여의치않으면 지인들이 시켜준다는 '선'도 볼 생각이죠.  

 요즘 이항사업무를 조금씩 배우고 있는데....실항사 초기에 잠깐 배우고 일년이 넘도록 잊고 살다 다시 배우려니 이것저것 헷갈리고 모르고 있던 부분도 왕왕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집에 돌아가면 이것 때문에라도 아버지께 도움을 청하게 될 듯 싶어요.

  아젤리아의 김OO 일항사도 봄까지 푹 쉴거라며 부산에 한 번 내려오라고 전화까지 해주셨던데...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하려면 정말 바쁜 휴가기간이 될 듯 싶습니다. ^^ 그래도 여전히 배에 묶인 몸이니 아직은 그저 생각뿐이지만요. 

 오늘은 여기까지 조금 긴 메일을 적어봤습니다. ^^ 모쪼록 추위가 닥쳐오는 서울의 환절기를 우리 가족들 모두 건강하게 넘을 수 있길 기원하며.

2011년 11월 18일,
또 컨베이어 벨트가 고장나서 26시간째 작업이 안되고 있는 앙골라 루안다항에서,
둘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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