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원래 '사'짜 들어가는 직업들은 웬지 잘나가고 성공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실제 그 일을 하고 있는 이들과 바깥에서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이 이처럼 틀어지는 일도 없을 듯 싶습니다.

'항해사'

처음, 배에 올라왔을 때 선장님이하 사관들에게 가장 먼저 들었던 질문이 이것이었습니다. "왜 하필 배에 온거냐?"
다른 이도 아니고 처음 배에 올라온 견습 항해사가 대답하기에 상당히 껄끄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죠. 그때만해도 '멀쩡하게' 뭍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배에 올라온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니까요. 시간이 흘러 견습딱지를 떼고 3당직(항해사 & 기관사들은 하루에 4시간씩 두 번 당직을 서게 됩니다. 1,2,3등 항해사, 기관사가 24시간을 8시간씩 세 번 나눠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지금 저 역시 견습생으로 올라오는 이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너 배에는 왜 왔냐?"

땅에서 지내는 것보다 '조금' 위험하고 일반적인 일상을 가지기 어려워진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사실 선원들의 생활도 뭍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점은 잊어버리더라도 남들은 당연스레 가지는 일상이 배제되는 것이 이 생활의 가장 어려운 점이죠.

지인들과 점차 멀어지고 가족과의 단절을 시시때때로 느끼는 그것이 사실 가장 답답하고 어려운 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일반인들을 상대로한 단기양성과정을 통해 항해사, 기관사들이 채용되기 시작하면서 애초에 이런 부분들을 감안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던 해양계 대학이나 고등학교 출신과 달리 너무나 명확하게 땅과 바다의 차이를 느끼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죠.

바깥의 이들이 느끼는 것만큼 많은 급여를 보장받지도 못하는 실정이지만 불경기에 '청년백수 천만시대'를 맞이하며 점점 바다로 나오는 이들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 요즘입니다. (뱃사람이 돈은 많이 번다고 느끼는 것은 월급은 집으로 가고 몸은 배에 있는 특수상황이 낳은 모습이랍니다. 돈을 쓸 수 없으니 당연히 모이게 되거든요)

하지만, 이 일을 시작한 지 어느새 3년이 되어가는 지금 저는 그런 답답함을 제외하고는 이 일을 선택한 것을 잘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선교에서 당직시간을 보내면서 그 시간만큼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나를 믿고 편히 잠드는 동료들을 만나고, 저 역시 그 시간만큼은 눈을 부릅뜨고 배의 운항과 안전에 매달리면서 그동안 어중이 떠중이로 살아왔던 시기를 새삼 반성하게 되었거든요. '나하나는 괜찮겠지.'라는안일함이 바로 사고로 연결되는 곳이 바로 배이기에 당직시간을 제외하고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 시간만큼은 스스로의 존재감을 제대로 느끼는 시간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덕분에 장가갈 일은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입니다만(ㅠㅜ)그래도 '항해사'라는 일을 비로소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젠 그 누구도 제게 '왜 바다로 나왔냐?'고 묻지 않더군요. 아마도 그동안 묻어있던 땅의 흔적이 그만큼 씻겨나간 모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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